[백남준, 지금 여기⑪] 뉴밀레니엄, 구겐하임에서의 회고전

  • 임영균 사진작가

입력 : 2019.09.16 11:35

다가오는 10월(2019. 10. 17 ~ 2020. 02. 09)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막하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임영균 사진작가의 기록과 술회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 행보와 생애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1996년 봄, 과로로 인한 뇌졸중으로 백남준 선생의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전에는 필자가 뉴욕에 들를 때면 작업실 근처 단골 카페 Spring Street Cafe Gerry에서 커피도 마시곤 했지만 이후부터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집으로 전화하면 부인 시게코 구보다 여사가 퉁명스럽게 받으며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해주겠다고만 해서 전화 걸기가 민망했다. 1980년대 뉴욕에서 같이 공부했던 조각가 신현중 교수는 만약 백 선생이 한국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해 된장국을 먹을 수 있었으면 그렇게 일찍 중풍에 걸리지 않고 건강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었다.
2000년 1월, 필자는 미국 풀브라이트 연구기금을 받아 뉴욕대학교에 1년간 방문교수로 갔다. 당시 뉴욕 지하철 광고판에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구겐하임미술관의 첫 전시 <백남준의 세계>를 알리는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을 봤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해 2월 9일 구겐하임미술관 강당에서 열리는 <샬롯 무어먼 추모공연>에 일찍 가서 백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공연은 공식적으로 그의 생전 마지막 무대였다. 그날 백 선생은 휠체어에 탄 채 공연장으로 입장하다가 나를 발견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어린아이같이 작은 목소리로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오른손등도 많이 부어 있었다.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2000년 2월 9일 구겐하임 미술관 강당에서 백남준의 마지막 공식 공연인 <샬롯 무어먼을 위한 추모 공연>이 있었다. 백남준은 평생 예술 동지였던 샬롯 무어먼의 짦았지만 불꽃 같았던 그녀의 일생을 음악으로 추모했다. ⓒ임영균
샬롯 무어먼(1933~1991)은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암 투병 중이었지만, 백남준과 함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과 ‘TV첼로’를 알리는 데 함께한 그의 영원한 동지였다. 백남준도 무어먼에게 수차례 거금의 수술비를 보태주기도 했다. 이날의 공연은 백남준의 뮤즈이자 평생의 예술가 동지였고 플럭서스 동료 멤버였던 무어먼의 예술인생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무대였다. 무어먼이 생전 출연했던 abc TV 라이브 쇼를 강당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 재방영했다. 시간이 흐르자 백남준은 오페라 가수에게 모차르트의 레퀴엠 아리아를 부르게 하고 자신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공연 다음날인 2월 10일부터 구겐하임에서 <백남준의 세계> 회고전이 열렸다. 백남준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 대규모 전시를 열정적으로 진두지휘했다. 구겐하임 타워건물 중정에는 레이저를 사용해 <야곱의 사다리>를 허공에 설치했다. 백남준의 마지막 대표작이기도 한 <야곱의 사다리>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과 첨단 과학지식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야곱의 사다리>
7층 높이의 중정 타워 천장에 인공 폭포를 설치해 물줄기가 끊임없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다양한 빛깔의 레이저는 2, 4, 6층 계단 벽에 설치된 반사판에 지그재그로 굴절돼 물방울들이 흡사 천장의 창문을 통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올라가는 듯한 형상을 연출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캔버스가 되고 백남준은 이 폭포수를 텔레비전 모니터로 삼아 다양한 빛깔과 형상을 창조해 하늘로 날리고 있었다. 백남준은 건강 악화로 인한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듯, 스스로 영원 속 우주로 날아가는 작품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에 입장하자마자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오묘한 물방울의 행렬에 탄성을 지르며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이 하늘에서 낙하하는 물줄기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다시금 지상과 하늘을 반복해 쳐다보며 탄복했다.
작품이 발표되자 미술평론가 그레이스 글루엑은 뉴욕타임즈 2000년 2월 11일 자에 ‘백남준은 시각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하며 <야곱의 사다리>의 사진과 함께 두 페이지에 걸쳐 작품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에 앞선 1월, 아트뉴스는 뉴밀레니엄 특별호에서 ‘백남준은 뉴밀레니엄에서 20세기의 마르셀 뒤샹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임영균은 1982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그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며 20년간 예술가로서의 동반을 이어갔다. 백남준은 임영균의 작업에 대해 “예술사진이란,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라고 평한 바 있다. 
전국학생사진전최고상(1973),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 메리 포레스터 선정 전 미주 10대 사진가상(1985) 등을 수상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초대전(2007)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뉴욕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