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06 17:40
점(點)으로 쓴 색채의 소리… 시그니처 시리즈 ‘색점’ 등 공개
‘Stitching Time’展, 10월 12일까지 g갤러리

“평면 위에서 반복되는 중첩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본능적인 흔적과 깊이가 작품의 물질적 깊이가 아닌 ‘시간의 깊이’로 읽히길 원한다.”
양주혜(64)는 점과 선이라는 조형의 기본 단위를 활용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출해왔다. 그중 ‘색점(色點)’은 작가의 특징적인 소재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때, 낯선 언어로 쓰인 책에서 영감을 받아 색채의 소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후 각 알파벳에 색을 부여해 고유의 방식으로 언어를 터득해 지금까지 색채의 소리를 ‘쓰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물감을 끊임없이 겹치는 행위는 작가에게 시간을 포개 묻는 과정과도 같은데, 이를 화면에 쌓은 흔적은 곧 시간의 깊이인 셈이다. 작가는 침대보나 조각이불 등 일상적인 패브릭 용품에 색점을 찍어 과거를 지우고 현재를 입힌다. 즉, 낙점 행위를 반복하며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고 축적돼 가길 거듭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는 행위는 곧 입체 작업으로 연결되고 입체를 만드는 일은 그리는 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들기’에서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배접이나 퀼트의 방식으로 캔버스를 만든다. 그 후에는 덧칠과 덧붙이기를 이어가며 콜라주와 데콜라주의 끝없는 대화 속에서 점·선·면으로 구성되는 작가 고유의 입체적 회화세계를 완성한다.


양주혜 개인전 ‘Stitching Time’이 10월 12일까지 서울 청담동 g갤러리에서 열린다. 그간 국내에서 선보인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서울시 도시갤러리 옥수역 프로젝트’와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대중에게 익숙한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에서는 소개하지 않았던 시리즈를 대거 공개한다. 해외 뮤지엄 컬렉션이자 시그니처 연작인 ‘색점’을 비롯해 평면과 부조의 경계에 있는 조각 ‘꽃자리’ 연작 등이 내걸린다.
입체 설치작품인 ‘꽃자리’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감각이 돋보인다. 섬세한 바느질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감부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손이 꼼꼼히 닿아 밀도 높은 완성도를 볼 수 있다. 벽면에 부조 형식으로 설치돼 기존 평면 작업과는 다른 조각품으로써의 매력을 더한다. 한편, 그의 작품은 프랑스 페이 드 라르와르, 방되브르 레 낭시 미디어테크, 독일 에슬링겐 시립미술관, 벨기에 오푸스 오페란디 등 해외 유수 기업과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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