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지금 여기①] 뉴욕, 한여름 밤의 꿈 그리고 ‘TV Bra’

  • 임영균 사진작가

입력 : 2019.07.08 09:39

 
다가오는 10월(2019. 10. 17 ~ 2020. 02. 09)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막하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임영균 사진작가의 기록과 술회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 행보와 생애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서서히 물러나고 나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미풍이 불어오는 저녁,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의 유서 깊은 쉄터인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어디선가 흔치 않게 감미로운 첼로 선율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저녁의 산책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음악의 선율에 따라 걷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던 작은 불빛이 점차 밝아지며 눈앞에 나타난 공연장은 믿기 어려운 한여름의 밤의 꿈같은 현실이었다.
 
공원 광장 코너에 설치된 재단 모양의 무대 위에는 그리스 여신 같은 풍모의 여인이 바람에 긴 머리칼을 날리며 생상스의 백조를 우아한 모습으로 혼자 연주하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과 몸의 윤곽은 무대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 덕분에 입체적으로 보이며 더욱더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 조각이 연주하는 듯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샬롯 무어먼이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 때 1964년 공연했던 ‘TV Bra’를 재현하고 있다. ⓒ임영균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서 본 그 여신은 놀랍게도 상반신에 아무런 의상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생상스 백조의 부드러운 음률에 따라서 두 팔과 상반신을 좌우로 흔들며 첼로를 연주하는 여인은 상반신을 전라로 드러내고 중요한 가슴 부위만 작은 발광체로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발광체에는 무언가 작은 영상이 빛을 발하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연주하는 주인공의 영상이 나오는 아주 작은 TV 모니터였다. 그것도 실시간 방영되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무대 옆에는 동양인 남성이 연주하는 여성을 다각도로 촬영하고 있었고, 이는 주변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비치고 있었다.
 
여인의 감정이 물씬 드러나는 얼굴을 가까이 클로즈업했다가, 첼로를 연주하는 팔과 손의 움직임, 때로는 흔들리는 상체를 비롯한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관객들은 실제로 공연하는 연주자를 감상하다가도, 모니터에 나오는 그녀의 상기된 표정을 바라보며 연주자와의 교감은 배가돼 갔다. 
 
무료한 여름밤 도심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나는 여신의 음악에 홀려 빨려 들어가는, 흡사 한여름 밤의 꿈같은 현실을 경험했다. 아테네를 배경으로 만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인간 무의식의 심연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린 이야기가 실재하는 것 같았다. 백남준은 혼란한 맨해튼 도심에 살아있는 여신을 등장시켜 관람하는 시민의 무의식을 자연스럽게 충족시켰다. 뉴요커와 그리스 여신과의 재회를 연출하며 도시인의 성적 욕망을 예술로 승화해 채워주고, 힘든 삶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해소하게끔 해준 백남준. 그의 상상력과 연출력, 첨단 기술력의 완성도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바로 이 한여름 밤의 꿈은 1964년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공식 작품으로,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이 공동기획해 백남준의 작품을 뉴욕에 처음 선보인 공식적인 데뷔 무대가 됐다.
 
1964년 8월, 우연히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한여름 밤의 꿈을 충격적으로 체험한 당시의 예술학도 제럴드 프라이어는 인간의 무의식을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출한 백남준의 상상력과 기획력은 당대 예술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예측을 불허했다고 기억했었다. 이제 일흔을 넘긴 장년 예술가인 그는 여전히 그때의 감동이 떠오른다며, 워싱턴 스퀘어파크를 저녁에 지나칠 때마다 당시의 환시와 환청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했다.
 
나 역시 뉴욕에 갈 때면 해 질 무렵, 내가 2000년대 살았던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꼭 간다. 뉴욕의 여름 해는 길다. 해 저문 공원에서는 어디선가 더블 베이스의 프리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시 수십 년 전 그리스 여신인 샬롯 무어먼이 반라의 모습으로 머리칼을 날리며 연단 위에서 생상스의 백조를 연주하는 환시와 환청을 다시 느끼곤 한다.
 
◆임영균은 1982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그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며 20년간 예술가로서의 동반을 이어갔다. 백남준은 임영균의 작업에 대해 “예술사진이란,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 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라고 평한 바 있다. 전국학생사진전최고상(1973),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 메리 포레스터 선정 전 미주 10대 사진가상(1985) 등을 수상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초대전(2007)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뉴욕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