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6.07 09:00
김지원 “비행기 모듈은 작가와 작업실 조감하는 상징”
대표작 ‘맨드라미’ 신작 포함, ‘비행’ 연작 등 90여 점
‘캔버스비행’展, 7월 7일까지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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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줄 알면 놓치고 성공한 줄 알면 실패하길 반복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림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환영이더라.”
화가는 바람이 있는 것처럼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그림 속에 바람은 없다. 김지원(58) 한예종 조형예술과 교수는 그릴 수 없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지금껏 '그리기'라는 미적 행위에 매진하며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사회적 일상과 자연환경의 풍경을 꾸준히 주시해온 그는 이를 단순히 재현하거나 외관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이미지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질문하며 그 결과를 캔버스 화면 속 또 다른 현실로 표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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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독창적 색채의 조합,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유희하는 형태, 성글고 거친 표면의 질감은 김지원의 주무기. 이러한 조형적 탐닉은 대표작 <맨드라미>에서 잘 드러난다. 2000년경부터 이어오고 있는 긴 호흡의 연작으로, 작가가 맨드라미에 처음 눈길을 준 이유는 ‘이상해서’였다. 기괴하고 징그러운 것이 꽃이지만 사람 뇌 같기도, 고깃덩어리 같아 동물적으로 다가왔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김지원의 맨드라미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로테스크하며 어둡고 쓸쓸함이 풍긴다.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오브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작가가 말을 보탰다. “맨드라미는 화려함과 스러짐이 공존하는 꽃이다. 지금껏 시들고 탈색된 맨드라미를 그려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 ‘겨울화’된 맨드라미를 볼 수 있을 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심리적인 변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런 컬러 톤으로 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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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적인 시선과 다양한 매체로 보다 넓게 차원을 확장한 김지원의 작업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전 ‘캔버스비행’이 마련됐다. <맨드라미>와 더불어 비행기 모형과 플라스틱조각, 철사뭉치, 그물 따위가 어지럽게 얽힌 <비행> <무제> 연작도 새롭게 공개했다. 2000년대부터 김지원의 작업실에 줄곧 놓여 있던 비행기 모듈이 전시장 천장과 벽 곳곳에 내걸었다. ‘작업실을 위에서 조망해본다면 어떨까’란 질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캔버스 나무틀과 다 쓴 붓, 주워온 나뭇가지로 만들어져 단순하지만 위트 있다.
비행기 조형물은 고도를 높이며 작가의 예술 행위가 벌어지는 장(場), 즉 작업실을 관망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이러한 비행기 모듈을 바라봄으로써 조수도, 말벗도 없이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하는 김지원의 고독한 작업 과정과 그 시간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 전시타이틀이 ‘캔버스비행’인 이유다. 작가의 작업 현장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자, 동시에 그의 미적 탐구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캔버스 회화 그 자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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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길거리의 플라스틱 조각, 공사장의 녹슬고 구부러진 철사, 얼키설키한 어망 등 일상의 하잘것없는 사물을 주워와 작업실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아 놓고 이를 무계획적이고 분방한 붓질로 그려내기도 했다. <비행> 페인팅과 <무제> 드로잉 시리즈에서는 조각 비행기의 항로 혹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의 화실을 둘러보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7월 7일까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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