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표정에서 읽어내는 어른의 불안감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6.04 18:54

서한겸 ‘영원한 소란’展… 7월 7일까지 서울대미술관

 
서한겸(33)은 개인의 감정과 행위, 그리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안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산다는 것과 죽음, 사랑, 그리고 세상과 작가 자신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철학전공이라는, 작가로서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작가의 주제의식이 철학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통해 빚어내는 세계는 철학이 대표하는 인간 이성이 구축하는 의미와 상징, 서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 급작스러움과 충동, 불안과 같은 격렬한 감정이 드러내는 역설적인 ‘사실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를테면 전쟁이라는 비극적 폭력의 현장에서 사랑을 보고, 긍정적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겨지는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불안정함을 포착해내는 식이다.
 
<아이 연작 51> 109x78.8cm 종이에 유채 2012 /서울대학교미술관
 
<아이> 시리즈 속 얼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동시에 불안정성과 불안을 한껏 담은 아이들의 면모를 전면에 드러낸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순수함을 표상한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작가는 어떤 이가 어린아이로 머무는 시간은 일시적이며, 언젠가 그 얼굴은 순수함을 잃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피부색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색으로 아이들의 피부를 그려내는데, 오히려 그러한 표현으로부터 전달되는 불안감으로 인해 그림 속 아이들은 마치 원래의 색을 되찾은 듯 보이게 한다. 작가 특유의 강렬한 원색과 거친 필치로 그려진 장면은 주제가 지닌 관념성으로부터 탈피하고 언어화되지 않는 삶의 단면을 제시한다.
 
가로 길이 30미터에 달하는 <롤 드로잉> 시리즈는 단일하고 연속적이고 이성적으로 구성 가능한 서사를 구축하지 않는다.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장 본질적인 인간 삶의 요소들을 한데 모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회 속에서 살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경험하며, 예외 없이 다가오는 죽음은 공포를 야기한다. 또한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상황은 불안과 한 쌍을 이룬다. 동시에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로부터 일시적이나마 구원해주는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삶은 이 모든 요소들이 현재진행중인 하나의 현장인 셈이다. 서한겸이 긴 종이에 차분하게 그린 폭력과 사랑, 불안은 강렬하거나 고요하기도 한 파편적 순간이 모여 만들어진 우리네 삶을 연상한다.
 
<학살당할 사람들> 112.1x145.5cm 캔버스에 펜과 유채 2011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쟁> 연작은 이러한 주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가장 비극적이고 물리적으로 표면화된 전쟁이란 현장은 역설적으로 연민과 사랑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곳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참고해 그린 <전쟁> 시리즈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오늘날 되살려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쟁의 잔인함을 돌이켜보게 한다. 7월 7일까지 서울대학교미술관 코어갤러리.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