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30 14:07
국제갤러리 부산 ‘Ha Chong-Hyun’展
고유의 ‘배압법’으로 완성한 접합 신작 등
새롭게 시도한 적색, 청색, 다홍색 대작 최초 공개
하종현(84) 화백이 4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가진다. 최근 LA,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해온 그는 대표 연작 <접합(Conjunction)>의 신작과 근작 10여 점을 7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한다.

하종현은 전위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한 196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물성 탐구 기간을 거치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군량미를 담아 보내던 마대자루를 비롯해 밀가루, 신문, 철조망 등 비전통적 매체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업방식을 시도했다. <접합> 시리즈는 마대자루를 활용한 이때의 경험에서 기인해 작가 고유의 기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이란 독창적인 방식을 구축하는데, 이를 통해 앞면으로 배어 나온 걸쭉한 물감 알갱이를 나이프나 붓, 나무 주걱을 사용해 자유롭게 변주한다. 캔버스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방법론에는 작가가 추구해 온 기성 형식에 대한 저항적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단색화 태동기부터 화면의 앞뒤를 구분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해온 바 있다.
일상 속 익숙한 대상에서 색을 발견하고 이를 조형적인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을 작업의 중요한 지점으로 삼는다. 마포 고유의 색이 완전히 없어질 정도로 검게 칠한 작품 <접합 18-41>(2018)은 단순히 어둡거나 인공적인 검은 톤의 색채가 아닌, 오랫동안 비를 맞은 기와가 세월에 퇴색된 듯한 자연적인 성향의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적색과 청색, 다홍색을 도입했는데, 대표적으로 작품 <접합 18-12>(2018)에서 보이는 선명한 다홍색은 단청과 한국전통악기의 화려한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마포에 검은색 물감을 칠한 다음, 뒷면에서 흰색 물감을 밀어내어 앞면의 표면에 그을음을 입힌 <접합 18-52>(2018)도 눈여겨봄직하다. 검게 그을린 표면을 다시 살짝 긁어내 음악의 형태로 흰색 물감을 노출하고 그 위에 얇은 철사를 사용해 서체와 같은 일종의 표식을 만들었다.
물감에 그을음을 씌운 기법은 2015년부터 작가가 시도해오고 있는 것으로, 마포 앞면의 물감이 마르기 전에 횃불처럼 나무 막대기에 천을 두르고 휘발유를 부은 다음 불을 붙이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를 캔버스 앞면에 밀려나온 물감에 씌우는 방식이다. 하 화백은 "그을린 물감을 앞쪽에서 펴 바르거나 밀어내면 예상하지 못했던 묘한 색채가 나타나는데, 이는 시간의 깊이를 압축해 담아내는 과정에서 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 자연의 색을 얻기 위한 방법론의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로, 자연이 주는 우연성을 수용하는 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여든을 넘긴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는 물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에 열성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구성을 탐구하며 회화의 방법론을 확장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아울러, 오는 9월 밀라노 카디 갤러리와 2020년 2월 런던 알민레쉬 갤러리에서 각각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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