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22 11:05
홍정욱, 실존 공간과 상호 작용하는 ‘설치 같은’ 회화 신작 선봬
개인전 ‘플라노-’, 내달 29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
홍정욱은 회화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각의 캔버스 형태와 이를 왜 항상 벽에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며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간 전체와 호흡할 수 있는 형태와 실현 양식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왔다.
전통적인 회화의 개념은 3차원 공간을 재현한 트롱프-뢰유(Trompe-l’oeil), 즉 눈속임으로서 실제의 공간과 분리된 환영적, 독립적 공간을 의미한다면, 홍정욱은 회화의 기본 재료인 캔버스와 틀을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와 존재론적 접근에 변형을 가해 실질적인 입체 공간으로 직접 개입될 수 있도록 한다. 회화의 지지체인 캔버스의 틀은 그의 작업에서 삼각형, 오각형, 팔각형, 원형 등의 도형으로 다변화돼 조형성을 드러내며 그 틀의 내외부 요소와 합일을 이루고 조응한다.


27개의 마름모꼴 틀로 이뤄진 연작 <Ulterior>는 내부에 볼록한 형태의 틀을 부가해 캔버스 천 위로 선이 두드러지도록 했다. 원형이나 다각도에서 본 원근법적 정육면체와 같은 형상이 연상되도록 한 부조 같은 회화 시리즈다. 또 다른 연작 <Infill>과 <Cacophony>에서는 캔버스 천을 제거해 나무틀과 삼각형, 사각형의 유리, 줄, 발광 아크릴, LED 조명 등 서로 상이한 재료을 조합해 형상과 색채,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실험했다.
안을 채운다는 의미가 강조된 <Infill> 연작은 작가가 특히 공들여 제작한 나무틀이 사용됐는데, 넓은 단면의 나무기둥 대신 1mm씩 각도를 기울여 절단한 작은 나무 조각을 접착제로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작은 조각을 연결, 고정시켜 타원형, 원형, 팔각형의 틀로 작업해 나무 조각의 넓은 단면이 아닌 얇은 두께 부분이 정면에 보이게끔 했다. 복잡하고 세밀한 제작 과정을 통해 회화 캔버스의 넓은 부분만을 바라봐야 하는 일반적인 정면성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환기하고자 했다.
또한 천이 제거된 열린 회화 공간은 내부의 의미를 다른 관점으로 정의한다. 나무 프레임과 그 안에 다른 색상과 형태로 겹쳐진 유리 도형은 빛을 투과시켜 회화 공간의 외부 요소를 내부로 편입하는 효과를 빚어낸다. 유리가 아닌 발광 아크릴과 LED 조명을 사용해 색채와 빛의 조합을 실험했다. 빨간색의 형광 아크릴과 파란색 조명이 충돌해 나무틀의 내외부로 형상을 부연하는 보라색 후광이 생성된다. 이 오묘한 보라색 조합에서 본래의 빨강과 파란색은 보일 듯 말 듯한 미묘함을 자아낸다.

불협화음이라는 뜻의 <Cacophony>는 작품의 개방 구조 내에서 이질적인 형과 색채가 겹쳐지고 충돌하면서 유발되는 총체적 작용을 강조했다. 원형의 나무틀 내부에 결합된 삼각형의 유리 도형과 선은 언뜻 구조적인 불안정감과 함께 투명성, 일시성, 나약함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이한 요소가 모여 만들어낸 불안한 공존은 이들이 상충되며 극단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유발하며 전복된다. 이를 통해 홍정욱은 부조화의 균형이라는 의미의 모순을 가능하게 하고 가시화한다.
작가가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을 바탕으로 해 단순한 도형을 주조로 공간 전체에 다양한 형태의 공명을 유도하는 신작을 공개했다. 입체적 페인팅과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홍정욱의 개인전 ‘플라노-(Plano-)’가 6월 29일까지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전시장을 수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작품의 형상과 색채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간 안에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를 함께 고민하면서 다양한 작품의 형태를 제작하고 변경하거나 도형과 도형 사이의 합치와 관계성을 탐색했다. 이러한 작품 실현 양식을 두고 그는 ‘진화’라고 정의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작품은 가장 적정화된 형태성과 최적화된 위치를 찾아가면서 최종적인 작품으로 진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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