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08 18:15
[인터뷰] 강서경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
11일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가
총감독 방한해 직접 초청해가… “작가 고유의 방법론에 매료됐다”
베니스서 신작 ‘Land Sand Strand’ 공개 “내 작업 요체가 응축된 시리즈”
대표작 ‘Grandmother Tower’도 함께 선봬
한국의 여러 전통적 개념과 방법론을 기반으로 오늘날을 이야기해온 강서경(42)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는 현대 사회 속 개인을 고찰하고 이를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매체로 풀어내왔다. 전통을 재해석한 고유의 조형 어법에 세계 미술계가 먼저 주목했다. 지난해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ICA)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어서 아트바젤 발루아즈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대세임을 입증, 이후 리버풀비엔날레와 상하이비엔날레와 참가하는 등 활발한 국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초대됐다는 낭보를 듣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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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이 오는 11일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한다. 한국 작가로는 이불과 아니카이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2015년 리옹비엔날레를 이끈 랄프 루고프(Ralph Rugoff)가 총감독을 맡아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를 주제로 약 200일간 진행된다.
이번 초청이 성사된 배경은 지난해 리버풀비엔날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람객으로서 전시장을 방문한 루고프 감독이 강서경의 신작 <Land Sand Strand>를 보고 매료돼 먼저 접촉해온 것. “리버풀비엔날레가 개막한 지난 7월 루고프 감독이 연락해왔어요.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전통을 보여주는 제 방법론이 흥미롭다면서요. 첫 연락 후 두 달이 지난 지난해 9월, 이곳 제 작업실을 찾았고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그리고 비엔날레가 열릴 두 장소에 각기 다른 두 작품을 걸자며 정식 초청을 받았습니다.” 강서경은 베니스 쟈르디니(Giardini)에 오랜 기간 이어온 연작 <Grandmother Tower>를, 아르세날레(Arsenale)에는 <Land Sand Strand>를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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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Sand Strand>는 지난 5년간 작가가 몰두해온 <검은 자리 꾀꼬리>에서 파생됐다. 조선시대 궁중무인 춘앵무(春鶯舞)와 조선시대 전통 악보 체계인 정간보(井間譜)의 그리드 시스템을 개념적 기반으로 삼는다. 춘앵무는 한국 궁중무용으로, 왕골로 만든 돗자리, 즉 화문석 위에서 추는 춤이다. 이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이뤄지는 공간이자 동시에 그 움직임을 제한하는 물리적인 경계이기도 하다. 강서경은 이를 두고 ‘검은 자리’라고 부르는데, 작가가 말하는 검은 자리란 한 개인에게 운신의 폭으로 제공되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또한 그 개인이 움직임의 범위를 넓혀감에 따라 무한히 확장 가능한 기본 그리드로 작동된다. <Land Sand Strand>가 <검은 자리 꾀꼬리>에서 갈려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다. “현재 제가 진행하고 발전시켜가고 있는 모든 작업의 요체가 응축된 시리즈랄까요.” 지난해 리버풀비엔날레에 출품해 루고프 총감독을 사로잡은 연작이기도 하다.
한 사람만 설 수 있는 좁다란 ‘검은 자리’지만, 강서경의 세계에선 무한히 변형되고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증식하는 그리드는 가능성의 땅(Land)이며 그 위의 개별 주체들은 모래 알갱이(Sand)로서 서로 충돌하며 유동적인 지류(Strand)를 빚어낸다. 이번 출품작은 회화와 설치를 포함해 행사 개막일 진행되는 액티베이션(퍼포먼스)과 영상을 동시에 아우른다.
액티베이션은 퍼포먼스를 지칭하는 작가의 표현이다. 대부분의 작업에서 액티베이션을 병행해왔는데, 모든 동작은 직접 만든다. 이번 액티베이션을 이루는 여든한 개의 움직임도 일일이 짰다. “퍼포먼서의 움직임을 따라 관람객의 시선도 움직이기 마련이죠. 퍼포먼서의 팔과 다리는 하나의 선(線)이자 방향성과 태도를 뜻하는 구조와도 같아요.”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기울기나 변화되는 위치, 공간에 대한 고민 등이 작품 밖으로 나와 안무로 엮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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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출품작 <Grandmother Tower>는 2011년 시작된 가장 오랜 연작이자 지난해 아트바젤 발루아즈상을 거머쥐게 해준 대표작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고한 조모의 초상을 조각으로 구현하는 데서 비롯됐다. 조각과 회화 등이 한 공간 안에 고루 배치됨으로써 작가는 개인이 참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적 서사를 선보인다. 과거와 현재라는 두 이질적인 시간 축을 넘나드는 작가의 태도는 재료의 활용방식에도 드러난다. 주재료인 스틸은 나무나 왕골, 가죽, 실 따위와 함께 짝지어 활용되는데,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 소재를 섞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공존의 방식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베니스 이후 강서경의 다음 행선지는 스위스 바젤이다. 6월 열리는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터에 <검은 자리 꾀꼬리>를 건다. 이어서 9월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MUDAM)에서 개인전을 연다. 지난해 발루아즈상 수상작 기증된 곳이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는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그룹전, 10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 ‘사각, 생각, 삼각’을 가진다. 그는 향후 국내에서의 활동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의도치 않게 해외 활동에만 치중해온 듯 보이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앞으로 국내에서 전시 기회가 자주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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