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03 17:52
아트조선 공동 기획 ‘담(淡)’展
홍콩 에이치퀸즈 화이트스톤서 19일까지 열려
빌딩 내 브랜치갤러리서 개최된 한국 작가 전시로는 최초
한국 고유의 정신성과 미학 담은 작품 40여 점 선봬
세대별 한국 현대미술 대표 3인 서승원·김근태·김덕한 참가
살아온 시대는 서로 달라도 작업의 근간이 한국의 ‘담’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공통으로 한국 작가 3인이 모였다. 서승원, 김근태, 김덕한 3인전 ‘담(淡)’이 홍콩 에이치퀸즈(H Queen’s)에 위치한 화이트스톤(Whitestone) 갤러리에서 1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주홍콩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작가’전(展)의 연계 전시로서 <아트조선>과 화이트스톤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된다. 에이치퀸즈는 화이트스톤, 데이비드즈워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등 세계 메이저 갤러리들이 입점해 있는 아트 전문 빌딩으로, 에이치퀸즈 내 해외 화랑 브랜치에서 열리는 한국인 작가 전시로는 최초다. 한국의 정신적 요소를 담은 한국 작가의 예술적 여정이 아시아 예술의 중심인 홍콩에서 소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전시 타이틀 ‘담’은 한국 고유의 정서를 칭하는 것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아름다움과 그에 내재된 정신성을 뜻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 상태’ ‘명상과 같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듬고 세상과 인간사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를 배경으로 한다. 즉, 작가 3인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한 담담하고도 그윽한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잠재력을 국제 미술계에 알리고자 마련된 자리다.
지난 반세기간 공간성과 시간성을 나타내는 작업에 몰두해온 서승원 작가, 단색 물감을 바르고 말리기를 거듭하며 무형의 정신적인 세계를 캔버스에 드러내는 데 매진해온 김근태 작가, 한국 전통 옻칠 기법과 재료로 시대성과 역사성을 담아왔다고 평가 받는 김덕한 작가가 작품을 내건다.


서승원 작가는 한국적 정서와 호흡하며 현대미술을 자기화한 한국 1세대 화백으로 일컬어진다. 어린 시절 문풍지가 뱉어내는 은은한 달빛의 기억과 오방색 등의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화면에 녹여낸다.
달빛이 창호지를 적시며 스며 나오듯 한번 정제되고 탈색된 색은 동시성의 정체성을 이루는 바탕이다. 보일 듯하지만 결국 뚜렷이 보이지 않는 그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동시성 시리즈를 여태껏 고수하게 됐다. 이는 그가 화면을 구성하는 밑칠 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과 같은 이유다. 흰색을 거듭 칠하며 그림의 바탕을 다지는 것인데, 묵묵히 반복하는 밑칠 작업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세상 밖으로 내보이기 위함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백자 등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자연스러움에서 나온 파스텔톤의 중간색을 띤 회화 연작 <Simultaneity>를 선보인다. 그의 과거 기하학적인 추상화에서 시작된 ‘동시성’이란 주제는 작가에게 있어 중용의 의미이며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내포하고 있다.


선(禪) 수행하듯 반복적인 붓질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 매진해온 2세대 작가 김근태는 시그니처 연작 <Discussion>을 출품한다. 그는 단색 물감을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 지움과 절제를 통해 궁극의 비움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마음은 비워내는 수행적인 태도를 일관해왔다.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무형의 정신적인 세계를 탐색하며 화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희거나 검은 무채색 작업을 포함해 돌가루를 섞은 작품도 함께 공개한다. 그의 그림에는 화려한 색채도 없지만 틀이나 격식도 없으며, 작가가 붓을 든 순간의 심상이 화면에 담길 뿐이다. 그중 백색 바탕의 ‘화이트 시리즈’는 세월이 지날수록 은은하게 드러나는 백자의 미학과 한지의 백색 그리고 이를 만들던 선조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짙은 암흑의 화면의 ‘블랙 시리즈’는 떡을 찌는 시루의 쥐색 빛깔에서 왔다.
시루떡(검은) 색과 한지의 (백)색은 외국의 어느 작가도 쉽게 표현해내지 못한다. 무작위로 덧칠해진 선처럼 보이지만 호흡을 멈추고 정성을 담은 한 획 한 획 그은 선들은 자연스럽게 캔버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덕한은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재료로 반복적으로 색을 쌓아 올리고 벗겨내어 자신의 색을 구축해온 30대 젊은 작가다. 인간은 작가에게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이번 전시에는 한 인간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행성과 같은 모양의 구(球) 형태로 제작한 입체 작품과 옻칠을 주재료로 한 연작 <Overlaid>를 함께 내보인다.
영묘한 겹이 켜켜이 쌓여 그 경계가 모호한 그의 화면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결과물로, 과거에 쌓였던 것과 그 위를 덮은 색이 한데 어우러져 현재 보는 이의 모습을 비춘다. 작가는 옻 도료를 칠하고 이를 다시 벗겨내며 지난 과거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쌓아낸다. 작가는 옻을 재료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 “지난 시간,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 옻칠에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화이트스톤 측은 “단지 시각적인 관점에서만 이들 작가의 작품을 하나로 묶을 것이 아니라, 감정, 마음의 상태, 존재의 감각을 이들의 작품에서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승원, 김근태, 김덕한의 작업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했는지에 관한 고민에서 기획된 이번 전시를 통해 ‘담’ 정신의 본질과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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