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展 기획자가 직접 꼽는 ‘최애’ 작품은?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4.10 10:12

[인터뷰]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1019억원’ 세계 최고 몸값, 한국 왔다… ‘아시아 최초 회고전’ 개막
영국 테이트미술관 外 해외 소장품 133점 규모
1950년대부터 2017년까지 연대별 7개 섹션 구성
수영장 시리즈 ‘A Bigger Splash’,
미완작 ‘George Lawson and Wayne Sleep’ 포함

관람객이 < My Parents >(왼쪽)를 감상하고 있다. 이는 호크니가 부모님을 그린 초상화다. 그 옆에 걸린 그림은 < Mr. and Mrs. Clark and Percy > /임영근 기자
 
9030만 달러(1019억 원).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그 자리에서 낙찰된 아크릴 대작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1972)의 가격이다. 생존 작가로는 최고 경매가를 기록, 명실공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가 된 데이비드 호크니(82·David Hockney)의 작품이 한국 관람객과 마주했다.
 
호크니는 지난 60여 년간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다매체의 경계를 오가며 실험적인 표현 양식을 시도하는 데 있어 거침없었다. 잘하는 것과 익숙한 것을 고수할 수도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동성애, 인물, 풍경 등 동일한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재시도하거나 새로운 걸 좇는 데 몰두해왔다. 다채롭게 변모해온 그의 예술적 여정을 두고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 ‘데이비드 호크니’가 지난달 22일 개막, 전시기간 2주를 넘기며 누적 관람객수 4만 명을 돌파했다. 주말이면 입장하는 데에만 긴 줄을 늘어뜨리는 진풍경을 자아내는 등 작품값만큼이나 거장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를 만나 호크니의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법에 대해 물었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이어진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함께 ‘데이비드 호크니’展을 공동 기획한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임영근 기자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이다. 기획 단계부터 전시가 성사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호크니 전시를 해보자는 말이 나온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으로, 당시는 호크니의 80세 생일을 맞아 테이트,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이 순회하던 때다. 회고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시를 기획하던 중, 일반적인 전시와는 다른 다소 이례적인 내용을 알게 됐는데, 해당 순회전엔 호크니와 큐레이터가 직접 개인컬렉터들로부터 섭외해온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거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호크니의 개인 컬렉터들과의 연락책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타 기관에서 대여해오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은 테이트의 컬렉션이 순회전 출품작에 견줄만하다고는 결론을 냈다. 호크니 본인을 제외하곤 가장 주요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테이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테이트 소장품이자 호크니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 중 하나인 <A Bigger Splash>(1967) <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 등은 호크니의 작업에서 어떤 작품과도 비교하기 힘든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된다.
 
테이트 외에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 호주 국립미술관,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 등 추가로 7곳의 기관에 연락해 해당 기관의 소장품을 추가로 확보했다. 사실 훨씬 더 많은 기관에 연락했지만 전시 일정이나 여러 요인으로 인해 거절당하기도 수차례였다. 대여 의사를 전하면 해당 기관에서는 위원회가 열리고 대여 승인 절차에 최소 1년가량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 대한 정밀 검증도 이뤄지는데, 이를테면 작품을 전시하기에 적절한 환경인지, 알맞은 온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인지에 대한 기관 평가가 병행됐다. 또한 작품 이미지 하나에도 저작권 관련해 신경 써야할 부분도 많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테이트가 소장 중인 호크니의 작품 중 단 한 점만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다. 샤워 중인 남자의 뒷모습이 담긴 <Man in Shower in Beverly Hills>(1964)는 현재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 나가있어 한국에 오지 못했다. 전시 출품작 133점 중 100여 점이 테이트 소장이다.”
 
< A Bigger Splash > 242.5x43.9cm Acrylic on Canvas 1967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 Mr. and Mrs. Clark and Percy > 213.4x304.8cm Acrylic on Canvas 1970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호크니는 지난 60여 년간 정체하지 않고 꾸준히 변모하며 매체도 화풍도 각기 다른 다채로운 작업을 보여 왔다. 작가의 연대기적 변화와 화업 여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짚어 달라.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지만, 대중이 과연 그의 작업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선행됐다. 그에 따라 전시를 일곱 개의 소주제를 바탕으로 나눴다. 작업 스타일적으로 확실하게 구분점이 있기 때문에 시기별 특징을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이 이뤄졌다. 이에 맞춰 테이트 소장품을 비롯해 타 기관 소장품을 혼합해 내걸었다. 초기 영국 왕립예술학교 시절 주목받은 작품부터, 오늘날까지도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1960~1970년대 로스엔젤리스 시기의 작품과 자연주의 시기의 2인 초상화,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동양의 두루마리 회화에 영향을 받은 다시점 구도의 작품, 다양한 판화 기법을 실험적으로 시도한 연작, 대규모 풍경화와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한 작품까지 망라한다.
 
작품 말고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 자료도 함께 선보인다. 폴라로이드 사진과 호크니의 글이 41페이지에 걸쳐 실린 1985년 파리 보그(Vogue)지와 호크니가 영국 테이트에 쓴 편지라든지 여러 자료와 출판물을 준비했다. 이외에도 호크니 관련 영상이 세 점 상영되는데, 꼭 챙겨보길 권한다. 전시를 보고 의문이 들었거나 궁금했던 게 일순 해소될 거라 생각한다. 고향인 요크셔로 돌아가 풍경화를 그리는 호크니를 3년간 촬영한 <데이비드 호크니: 점점 더 커지는 그림>(2010), 2년 전 대규모 회고전에 앞서 호크니 지인들의 말을 빌려 그의 화업을 되짚는 <데이비드 호크니: 되찾은 시간>(2017), 고정시점과 이동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호크니를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중국 황제와 함께한 대운하에서의 하루, 또는 표면은 환영이지만 깊이 또한 마찬가지이다>(1988)가 전시기간 상영된다.”
 
─전시를 준비하며 담당 큐레이터로서의 가장 큰 고민이 있었다면.
 
“60년에 걸친 화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무엇일지 고민이 컸다. 전시에는 주로 부제가 붙기 마련이잖나. 그러나 고민을 거듭할수록 이 작가를 수식하는 게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더라. 호크니의 지난 60년을 관통하는 주제를 엮어내려는 시도가 억지스러웠다고나 할까.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붙이지 않은 채 그저 ‘데이비드 호크니’라고만 전시 타이틀을 가기로 결정했다.”
 
< Bigger Trees near Wa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 > 457.2x220cm Oil on 50 Canvases 2007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
 
─명색이 회고전인데, 일각에선 작품 구성에 대한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호크니 예술세계에서 주요 지점 중 하나인 1980∼1990년대 포토콜라주 작품이 제외된 것이나 2000년대 이후 선보인 아이폰·아이패드 그림이 없는 게 내심 아쉽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전시가 호크니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것임은 자신한다. 그러나 호크니가 행해온 모든 매체와 그 활용법을 일일이 짚는 전시는 아니다. 대중은 호크니를 아크릴, 유화 작가로만 여겼을 수 있지만, 정작 자연주의 시기 이후엔 그림에 그다지 매진하지도 않았고 전시 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판화를 비롯해 사진, 무대디자인 등에 관심을 돌리고 실험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일례로, 그의 커리어에서 판화는 상당히 중요한 매체고, 실제로 기사 등을 통해 호크니 스스로도 판화를 자주 언급한다. 테이트도 그러한 이유로 호크니의 판화 작품을 많이 갖고 있다. 어떤 전시라도 작가의 모든 걸 다 보여줄 순 없지 않겠나. 
 
그보다도 기존 테이트 컬렉션에선 없던 ‘푸른 기타’란 섹션을 이번 전시에 추가 구성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을 더해 대중 입장에서 호크니의 작업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피카소’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이뤄진 이 섹션은 1973년 피카소 사망 후, 호크니가 작업한 판화 시리즈 <푸른 기타>로 꾸며진다. 피카소는 호크니의 영웅과도 같았다. 벌거숭이로 그린 자신과 피카소가 마주보는 <Artist and Model>(1974)은 이번 출품작 중 맨 마지막에 확보된 작품이기도 하다. 자연주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엄격한 양식이 아니어도 세상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때로, 이 시기를 관통하며 호크니는 20세기 후반 판화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중요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3층 전시실 마지막 공간에 50패널로 구성된 <Bigger Trees near Wa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2007)은 2000년대 이후 요크셔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론 이만한 게 없다.”
 
< George Lawson and Wayne Sleep > 2125x3008mm Acrylic Paint on Canvas 1972~1975 ©David Hockney·Tate
 

< In the Studio, December 2017 > 2781x7601x25mm Inkjet Prints on Paper, Mounted on Aluminium(Assisted by Jonathan Wilkinson) 2017 ©David Hockney·Tate /Galerie Lelong & Co.

 
─수많은 출품작 중에서도 눈여겨봐야할 작품은?
 
“개인적으론 첫 번째 섹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에서의 두 작품 <The First Marriage(A Marriage of Styles I)>(1962)과 <The Second Marriage>(1963)를 중요하게 본다. 호크니가 현대미술가로서 어떤 방식을 취할지 고민하는 게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결혼’이란 한 주제를 두고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나타난다. 세 번째 방 ‘자연주의를 향하여’에 걸린 미완성 2인 초상 <George Lawson and Wayne Sleep>(1972~1975)도 눈여겨봄직하다. 고정시점을 극복하기 위해 3년간 매달렸지만 결국 미완성으로 남겨둔 그림으로, 호크니의 섬세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 공간의 가장 끝자락에 걸린 사진 작품 <In the Studio, December 2017>(2017)은 호크니가 테이트에 기증한 것인데, 기증받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온 특별한 작품이다. 더불어, 마지막 섹션 ‘호크니가 본 세상’에 있는 대작 <A Bigger Grand Canyon>(1998)도 빼놓지 말길. 1990년대 후반 진행된 멀티 캔버스 시리즈 중 하나로, 60개 캔버스로 이뤄져 폭이 7m에 달한다. 흡사 그랜드 캐니언의 절벽에 올라 광활한 절경을 직접 보는 듯하다. 불타오르는 것 같은 빨간 풍경과 그 위를 아주 얇게 메운 지평선의 대비가 가히 압권이다.”
 
─<A Bigger Grand Canyon>를 통해 멀티 패널의 다시점 대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포토콜라주에서 비롯돼 화면이 분할된 이 작업에 대해 첨언한다면.
 
“호크니는 원근법을 벗어나고자 했다. 인간은 두 개의 눈을 갖고 있지만 바라보는 시점은 하나이지 않나. 그는 움직이는 세상을 평면에 어떻게 담고 묘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피카소의 큐비즘이나 동양의 두루마리 회화도 그 맥락에서 차용했다. <A Bigger Grand Canyon>에서도 한 패널이 하나의 시점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포토콜라주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 사진으로 찍힌 이미지의 중첩이 서로 다른 시간의 공존과 확장된 시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였다. 이 작품을 통해 호크니는 60개의 패널, 즉 60개의 분열된 소멸점을 2차원 평면의 원근법을 무력화하고 인간의 시각 인식 체계와 유사한 다시점 방식으로 관람객의 시선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 테이트 컬렉션은 ‘움직이는 초점’ 작품들에서 곧바로 50 패널짜리 대작 풍경화 <Bigger Trees near Water or…>로 넘어가도록 구성돼 있어 1990년대 작품에 공백 아닌 공백이 있었다. 지난 20~30년간 호크니는 초상화에 이어 풍경화에 매진했는데, 그 서사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선 <A Bigger Grand Canyon>만한 작품이 없다고 판단, 호주 국립미술관에서 대여해왔다. 호크니는 그랜드 캐니언을 주제로 많은 회화를 그렸지만 이번 출품작은 이전 회고전에도 포함된 적 없는 작품이다.”
 
< A Bigger Grand Canyon > 207x744.2cm Oil on 60 Canvases 1998 ©David Hockney,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Collection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 A Lawn Sprinkler > Acrylic on Canvas 1967 /curiator
 

─1960~1970년대 로스엔젤리스 시기, 유난히 물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A Bigger Splash>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과 물살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고민을 쏟았다고도 전해지는데, 호크니의 작품에 물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매일 비가 오는 우중충한 런던에 있다가 햇볕이 쨍한 로스엔젤리스 산타모니카로 이사를 간 호크니가 바뀐 환경에 큰 영감을 받았던 듯하다.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그곳의 분위기에 매료됐던 거다. 또 개개인마다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사는 것도 놀라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 수영장 물 표면의 반짝거림들 따위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 <A Bigger Splash>에선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물의 특성을 포착하는 방식에 천착하며 회화의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고자 물방울만 2주간 그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A Lawn Sprinkler>(1967)는 잔디밭에 스프링클러에서 물줄기가 흩뿌려지며 아지랑이처럼 묘사된다. 마치 실제 스프레이를 뿌린 것처럼 물줄기를 투명하게 그려 그 뒤가 그대로 비치는 걸 볼 수 있다. 그 당시 호크니는 물뿐만 아니라 유리 같이 무색의 투명한 물체를 그리는 데 관심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