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첫선 보이는 설치작가들… 저메인 크르푸, 리킷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3.15 18:44

대형 창문 앞에 벤치 놓아둔 <Two Seconds>
일상 사물을 소재로 긴장감 끌어내는 <입으로 씹는 것에 대해>

개인전 ‘After Image'에 설치된 < Two Seconds > /갤러리바톤
네덜란드 출신 설치예술가 저메인 크루프(Germaine Kruip·49)는 지난 20년간 시공간과 인간의 지각을 융합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무대 연출에 대한 작가의 경험은 자신이 관찰하고 연구한 대상이, 건축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시공간에서 보이고 체험되는 방식에 대한 미학적 탐구로 표현돼 왔다. 이러한 대상과 매체 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작가는 연극에서 실질적으로 부재하는 관객을 배우로, 무대 밖 장소를 무대로 전환한다. 이로써 관람자의 신체 인식과 심리 의식을 모두 활성화시킨다.
작가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23일까지 갤러리바톤에서 열린다. 크루프의 시기별 대표작을 응축해 보여주는 자리로, 작가가 천착해 온 진위성과 유사성에 관한 개념을 효과적으로 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정신적 공간에서 대두되는 '동시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기 위해 이전 작품과 근작이 결합된 구성을 선보인다. 동시성의 개념은 ‘현실 혹은 실제 상황’으로 간주되는 메커니즘에 의해서 강조된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자연스럽고 동시에 인위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개인의 근간을 이룬다.
그의 초기작 <Two Seconds>(2000)는 대형 창문 앞에 미술관용 벤치를 놓음으로써 극장과 영화관의 장치를 해체시킨다. 이 작품에서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로 간주되고, 작가는 전시 공간이 스스로 내부에서 외부 거리를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대립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거리에서 발생한 소리는 2초 정도 지연돼 전시장 안으로 실시간 전송되고 이는 우리가 관찰하는 일상적인 광경이 주는 익숙함을 교란한다. 
무대나 극장 스크린을 연상하는 큰 영상 <After Image>(2019)는 극장 공간을 영화적 경험으로 변형시킨 작가의 또 다른 작품 <A Possibility of an Abstraction>(2014~)에 대한 방대한 연구에서 기인했다. 그림자, 반사, 건축 양식과 무대 등 부차적 요소가 영화 같은 환경 속에서 순간순간 등장인물화하는 일종의 ‘인식 놀이’다. 영화가 발명되기 전 꼭두각시놀이나 그림자놀이와 유사하게 작가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스크린 대신 무대 맞은편에서 조명을 통제함으로써 마치 영화 같은 효과와 분위기를 조성한다. 영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 사이를 오가며 <A Possibility of an Abstraction>은 착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는 우리의 지각 속 가장자리에 명상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작가는 극장에 설치했던 작품의 한 장면을 갤러리 공간에 어울리는 형태로 옮겨냈다. 투사된 직사각형이 천천히 양(陽)에서 음(陰)으로 전환하는 화면은 사진을 촬영하고 문서화하는 과정과 유사한데,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경험을 상기시킨다.
리킷 개인전 ‘슬픈 미소의 울림’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홍콩 출신 작가 리킷(Lee Kit·41)은 걷기, 숨쉬기, 음악 듣기 혹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와 같이 일상의 평범한 경험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을 영상, 페인팅, 빛 그리고 음악이 결합한 설치 작업에 몰두해왔다. 리킷의 국내 첫 개인전이 4월 28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리킷은 지난 2년에 걸쳐 수차례 서울을 찾아 도시 곳곳을 걸으며 서울시민의 일상을 관찰했다. 전시 장소가 위치한 도시에 대한 경험과 관찰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매 전시마다 다른 작업, 다른 구성의 조합을 선보여 왔다. 
이번 출품작 <한 남자가 말했다>(2018)와 <무제(입으로 씹는 것에 대해)>(2019)에서 주로 천과 플라스틱 상자와 같은 일상 사물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는 평범한 사물을 ‘예술적인 것’으로 격상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존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 이 사물들은 마치 방금 전까지 사용했던 물건인 듯 무심히 놓여있으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일상 사물을 텍스트와 연결시킴으로써 사물을 어떠한 심리적 상황으로 옮겨 놓는다.
여백, 마치 덜 마무리 된 듯 윤곽이 희미한 그림과 영상 설치, 연한 빛과 그림자 등은 리킷의 작업에 있어 특징적인 요소다. 캔버스를 채우듯 빛과 색, 글자와 감정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연결해 공간을 구축한다. 일상적인 사물, 노래의 가사, 투명한 빛에 가까운 색들로 인해 그의 작업은 일견 평온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카롭고 위태롭기도 하다 이는 현대인의 일상에 잠재된 긴장과 모순을 향한 작가의 비평적인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