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ABHK에서 찾다①] “현대미술의 핵심 키워드는 共感”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3.13 00:26

[인터뷰] 정윤호 PKM갤러리 이사
이불, 윤형근, 전광영… 세계로 약진하는 한국 작가들
“작가 고유의 색깔과 한국 정서가 혼합된 작품,
세계 미술시장의 공감 얻었기 때문“
코디최 등 2019 아트바젤 홍콩에 동시대성 반영한 작품 다수 선봬
 

2018년은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단색화를 기점으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떠오른 한국 현대미술이 이제는 ‘최초’ 타이틀을 걸고 한 단계 발전한 성과를 내보이고 있다. 도발적인 설치 작품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불은 지난해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대규모 특별전을 가졌다. 21세기 들어 한국 작가로는 첫 번째로 개최된 개인전이었으며, 이는 곧바로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으로 순회해 올해 초까지 열렸다. 다가오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인 최초로 20년만에 재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한다.
 
‘한지 작가’로 잘 알려진 전광영 역시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지난해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개인전이 개막, 오는 7월까지 이어진다. 이후에는 조던 슈니쳐 미술관으로 순회한다. 작고한 작가가 다시금 조명되며 동시대 미술계에 재부상한 사례도 있다. 단색화의 ‘거목’으로 일컬어지는 윤형근이 올해 5월부터 11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과 맞물려 이탈리아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다. 이탈리아의 유력 미술관 중 한 곳인 포르투니에서 비엔날레 기간에 개인전을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진보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을 들고 세계 이곳저곳에 거침없이 돌진하며 동시대 미술, 그 길목에 발자국을 깊게 남기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PKM갤러리에 소속된 작가들이라는 것. PKM갤러리는 29일 개막하는 아트바젤 홍콩(이하 ABHK)에 이불, 전광영, 윤형근의 작품을 포함해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 미술시장에서의 위치와 정체성을 점검할 수 있는 작품을 내건다.
 
ABHK는 전 세계 미술인이 한데 모여 글로벌 아트마켓의 흐름을 읽고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이곳 부스에 걸린 한국 작가의 작품 한 점이 국제 미술시장에 각인되고 나아가 한국 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이유다. PKM갤러리는 2013년 ABHK가 출범한 이래 매년 빠짐없이 출전하며 국제 미술시장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힘써왔다. 7년째 참가하는 만큼 ABHK의 시작과 오늘에 함께 하고 있는 셈. 행사 개막을 앞두고 정윤호 PKM갤러리 이사를 만나 ABHK만의 특성을 묻고 아울러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관해 질문했다.
 
정윤호 PKM갤러리 이사가 백현진 작가의 작품 앞에 섰다. /임영근 기자
 
─7년째 참가하고 있는 입장에서 ABHK의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해 변화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비단 PKM뿐만 아니라 ABHK에 참가하는 모든 갤러리가 동감할 거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시아 컬렉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아시아 컬렉터들이 좀 과소평가된 면이 있었지만 점차 이들의 높은 구매력이나 수준을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하면서 덩달아 ABHK도 글로벌 아트마켓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됐다. 특히 다른 아트페어에선 공개되지 않고 ABHK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ABHK의 출품작의 질이 높아짐은 물론, 행사 자체도 유치하는 방식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프리즈(Frieze) 뉴욕, 피악(FIAC) 등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타 아트페어와 비교해 ABHK의 특색은 무엇인가.
 
“ABHK는 명백히 아시아에서 가장 위상 높은 아트페어다. 프리즈 뉴욕이나 피악은 개최되는 도시의 색깔이 짙게 드러난다면, ABHK은 그곳만의 독특한 융합을 이뤄내는 것 같다. 홍콩은 본디 아시아와 유럽 문화가 공존해온 도시 아니던가. 전 세계 미술인들이 모여 또 다른 조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특성 안에서 ABHK은 동서양 문화가 서로 소통하고 호흡하는 진정한 교류와 상생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출품작으로 구분해보자면, ABHK에 가져가는 작품은 대체로 화려한 색감이라면 파리에서 열리는 피악은 모노톤을 띠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각 아트페어가 열리는 도시의 분위기나 그곳에서 선호하는 트렌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ABHK에 참가한 PKM갤러리의 부스 전경. /PKM
 
─이제까지 마주한 관람객과 컬렉터가 상당수일 터. ABHK에서 만난 컬렉터나 관람객이 다른 아트페어의 그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 없는 건 어딜 가나 같나(웃음).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거야 전 세계인의 공통된 문화 아니겠나. 매년 ABHK을 찾으며 느낀 것은 이곳에서 마주친 컬렉터들과 관람객들이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무래도 먼 아시아까지 작정하고 방문한 것이기에 그런 거라 짐작한다. 작품에 대한 질문도 심도가 깊고 미술계의 새로운 정보 습득에도 흥미와 관심도가 높다.”
 
─현재 미술시장의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러한 동향이 ABHK에 어떤 식으로 발현될 거라 기대하는지.
 
“모 작가 혹은 어떤 그림이 유행한다 싶으면 그쪽에 우르르 몰리거나 그와 비슷한 작품에 쏠림현상이 있었다면, 요즘에는 이를 탈피해 컬렉터 개인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매한다. 관람객이나 컬렉터 모두 자신만의 니즈를 탐색하는 게 유행이라면 유행인 것. 다가오는 ABHK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날 거로 생각한다. 출품작도 더욱 다양해지고 관람객 또한 시장 동향보단 자신의 주관을 따라 선택하는 데 서슴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불作 < Infinity Wall > 190x270x17.5cm 2019 /PKM
 

전광영作 < Aggregation09-A012 > 163x131cm 2009 /PKM
 
─올 ABHK에 회화부터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채로운 매체의 작품을 들고 나간다. 출품작 관전 포인트라면?
 
“국내외 현대미술의 흐름과 동시대성을 첨예하게 반영하는 작품을 매체 구분 없이 고르게 골랐다. 문명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이불 고유의 언어로 풀어낸 최신작 <Infinity Wall>과 ‘사이보그 조각’을 냈다. 대형 스케일의 압도적인 이불 작품에 익숙했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크기가 작은 작품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에도 길이가 무려 10m에 달하는 초대형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인카운터(Encounters)’ 섹터에 참가해 2016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공개했던 ‘비행선 시리즈’의 일환인 <Willing to be Vulnerable - Metalized Balloon>를 설치하니 볼거리가 많을 거다. 특히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재 초대돼 오는 5월 베니스를 찾을 예정이니 명실공히 세계적 활약이 돋보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윤형근 작품으로는 작가의 시그니처 시리즈가 태동하는 1970~1980년대 제작된 그림으로 선정했다. 한지로 싸서 묶은 삼각형 오브제를 염색해 한 화면에 빼곡히 모아 집합체를 형상화해 전광영 특유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Aggregation> 시리즈는 가까이 보면 입체감이 더욱 도드라지니 한 발짝 다가서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해외 작가로는 2006년 PKM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최신작 2점이 내걸리는데, 오는 7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이 개최되기에 ABHK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 것으로 기대한다. 런던 기차역의 대형 공공 조형물로 주목받는 대런 아몬드(Darren Almond)의 거울 작품도 들고 간다.“
 
─출품작 대다수가 대작에다가 설치와 조각 등 구성이 대담한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나.
 
“ABHK에서는 과감한 사이즈의 작품들도 잘 수용이 되는 편이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압도시키기에 존재감이 큰 작품이 유리하지 않겠나. 워낙 다양한 취향과 니즈가 모인 자리다 보니 관람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다. 사이즈가 중요하기보단 작가의 작업적 특성과 예술세계를 드러내는 대작과 소품을 균형 있게 조합했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코디최作 < Dialectic Shampoo > 61x81.3cm 1992, < Hard Mix Master No.3 > 162.1x130.1cm 2019, < The Thinker 2019 > 30x50x72cm 2019, 227.3x181.8cm 2019 /PKM
 
─코디최가 ‘캐비닛(Kabinett)’ 섹터에 작품을 건다.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돼 참신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보여줄 건지?
 
“유머와 진정성은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이는 코디최가 지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위트 넘치면서도 참신한 코디최의 작업 세계를 국제 미술무대에 재인식시키기 위해 이번 캐비닛 섹터에 내걸게 됐다. 총 4점이 출품되며 초창기 작업, 대표 연작 등이 혼합돼 있어 코디최의 예술적 에센스가 함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이민 1.5세인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문화적 소외감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조각 시리즈 <The Thinker>는 평소 위장병을 달고 살던 그가 자주 복용하던 분홍빛 액상 소화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대표작이다. 페인팅 시리즈 <Hard Mix Master>는 작가의 아들이 1990년대 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린 디지털 작품의 소스 코드와 인터넷으로 찾은 해외 작품의 저해상도 이미지를 코드화한 뒤 여러 작품의 코드를 섞어 나온 그림이다. 요즘 들어 4차 산업 속의 미술이 화두인데, 코디최는 이 방향성에 대해 이미 20년 전부터 생각하고 표현해온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임영근 기자
 
─위에 언급한 한국 작가 모두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이들이 해외에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더불어 이들의 작품을 통해 앞으로 한국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면.
 
“그들 사이의 유사점은 작가 특유의 독창성이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와 융합해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세계인들과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감’이란 현대미술에 있어서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이를테면 이불은 한국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대치하며 개인이 겪은 억압과 고통을 작품으로 드러내지 않았던가. 이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미술로서 표현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국적 문화의 공유와 경험이 수월한 오늘날 세대에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 가능한 포맷을 제시해야 한국 미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