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그리는 아트 여행 ⑨] 부르봉 왕조의 흥망성쇠

  • 아트조선

입력 : 2019.03.04 09:16

프랑스 절대주의 왕제의 상징 '베르사유궁'에 살았던 왕들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이라 칭하고 이러한 상징을 궁전 곳곳에 장식했다. / Pixabay
이천여 개의 방과 오천 명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이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에는 누가 살았을까?
프랑스 절대주의 왕제를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 이곳에는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그리고 루이 16세가 살았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문화적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원래 루이 13세가 1624년 사냥을 즐기기 위해 지은 소규모 별장 정도였지만 루이 14세는 왕의 절대적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 공사를 시작했고 공사는 무려 50년이나 계속 됐다.
루이 14세는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전에 모아 자신을 태양이라 하고 귀족들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위성으로 만들었다. 즉,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이룬 것. 이에 따라 궁전도 태양을 중심으로 방사선 구조로 지었다. 베르사유 궁전 여기저기에서는 이와 같은 태양의 상징을 쉽게 볼 수 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 14세는 수시로 이곳을 방문해 총 지휘를 했는데, 그중 정원과 궁전의 공사진행 과정은 스스로 감독할 정도로 많은 애정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1624년 소규모로 건축됐던 궁전은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후 50년간 공사를 이어갔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Pixabay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증손자다.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중 오직 한 명, 루이 드 프랑스만 살아남았는데 그의 아들 3명 역시 모두 죽게 됐다. 당시에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왕가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루이 15세는 다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아야 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오를레앙 공 필리프가 섭정을 맡아 프랑스를 통치했는데, 루이 15세는 처음에는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았으나 점점 영향력을 잃었고 귀족들은 향락과 방탕에 젖은 생활을 일삼았다.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했지만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강력한 왕권을 세우진 못했다. 당시 프랑스 재정은 루이 14세와 루이 15세가 벌인 장기적인 전쟁으로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 이전에 통치한 부르봉 왕가 중 마지막 왕이었다. 왕정은 1792년 무너졌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처형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종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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