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2.15 18:52
강원도 홍천 곰실숲에 두고 온 빈 캔버스,
1년 뒤 찾으니 ‘대지의 시간’ 각인돼 있어…
자연의 목소리 들어보는 ‘Forest is the Artist‘展,
24일까지 플레이스막 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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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죠. 이런 상황에서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해요.”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예술 활동을 이어온 패트릭 라이든(Partick M. Lydon·38)의 화두는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전시 <Forest is the Artist>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곰실숲을 ‘작가’로 섭외해 이뤄졌다. 말 그대로 숲이 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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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라이든은 빈 캔버스 열 점을 들고 인적이 드문 곰실숲 깊은 곳에다가 두고 왔다. 그리고 꼭 1년이 되는 지난해 10월의 비 오는 어느 날, 작품을 수거하기 위해 다시 숲을 찾아 일곱 점을 들고 내려왔다. 세 점은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했고 결국 유실됐다. 그나마 거둔 일곱 점은 캔버스가 땅속에 묻혀 꺼내는 데 애를 먹었다.
어렵게 얻은 만큼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짧지 않은 작업 기간, 야생에서 홀로 풍화를 견뎠을 캔버스에는 흙과 나뭇가지, 지나가던 동물의 배설물, 그리고 비가 세차게 왔던 흔적이 새겨졌다. 곰실숲은 아티스트로 분해 그곳의 사계절 변화를 담아냈다. 대지의 지난 1년이 각인돼 있는 것.
“자연의 소리를 듣고 또 관객과 이를 공유하고자 기존 예술의 역할을 재현하려는 시도로써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숲은 우리에게 캔버스에다가 자신을 표현했고 저는 숲에게 예술가의 지위를 부여한 겁니다. 자연, 즉 곰실숲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은 자연에, 자연은 인간에게 서로 의미 있는 것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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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실숲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만 라이든이 대행했다. 이를테면 캔버스를 구입해 그곳까지 운반한다거나 작품을 진열하고 곰실숲을 대신해 글을 쓴다든지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저는 그저 곰실숲의 조수일 뿐이죠. 작업은 곰실숲 혼자 다 한 거예요.”
곰실숲은 드로잉 같기도, 물감을 흩뿌린 것 같기도, 질감을 살려 입체적인 회화 같은 것들을 남겼다. 다채로운 재료에서 비롯되는 질감, 묘한 색상 변화, 다양한 패턴이 특징인 작품들은 각자 고유의 개성을 지니면서 서로 퍼즐처럼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이달 24일까지 플레이스막 연희에서 열린다. 작품 크기는 8호(46cm) 정도며 판매가는 40만원이다. 전시가 끝난 뒤 판매 수익금은 지폐 등의 실물로 곰실숲 땅에 뿌려진다. 작가가 번 돈이므로 작가에게 전해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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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든은 지구에서 잘 사는 방법에 관해 고민하며 그에 대한 대안적 움직임을 미술전시,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 소개해왔다. 그중 다큐멘터리 영화 <자연농>(2011)을 통해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며 미국, 프랑스, 스코틀랜드 등에서 전시 활동 중이다. 지난해에는 충남 공주에서 열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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