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ist] 헤매고 탐험하고 발견하러 예술 속으로 들어간다

  • 안재영 광주교대 교수

입력 : 2019.02.12 09:46 | 수정 : 2019.02.12 09:49

日 아트 그룹 ‘팀랩’,
‘빛의 놀이터’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전시 열어
 

안재영 미술평론가(청주공예비엔날레 감독)
사람의 손짓·몸짓, 목소리에 예술작품이 반응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미디어파사드(Media-facade), 홀로그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키네틱(Kinetic) 등으로 관객은 직접 작품에 참여하고 변형하며 의미를 찾아간다. 현대사회는 소통과 평화,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치를 담아내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미디어아트가 줄을 잇는다. 빛, 비디오 매핑(Mapping), 인터랙션과 같은 기술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소리까지 더해져 절로 몰입하게 되는 환경이 조성된다. 경계가 없는 듯한 미디어 미로 속에서 헤매고 더듬다 보면, 말 그대로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요즘 미디어 아티스트의 경우 단순히 감각적인 현상만 체험하는 것을 넘어서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기후, 교통량과 같은 거대한 빅데이터(Big Data)들을 미세하게 필터링하고 빛과 영상으로 추상화해서 사람들이 그 정보를 체감케 하는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경계 없는 예술의 중심에 팀랩(teamLab)이 자리하고 있다.
 
도쿄 teamLab Borderless 전시 전경. /도쿄=안재영
 
일본 미디어 아트 그룹 팀랩의 전시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가 도쿄 오다이바 팔레트 타운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은 도시건축 개발회사 모리빌딩과 디지털 아트 예술가 그룹 팀랩이 협업해 완성했다. 전시는 1만㎡ 규모의 미로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빛의 놀이터다. 관람객은 몇 개의 테마로 나눠진 놀이터에서 오감을 동원해 미디어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빛이 관람객을 통과하고 다시 반응하고 모이고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마음껏 공간을 헤매면서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볼 법한 빛의 대자연을 체험한다. 전시장이고 복도고 구분 없이 이어지는 미로 같은 전시장을 탐험하고 헤매다 보면 꿈속을 거니는 듯하다.
 
동경대 물리학과, 수학과 출신들로 구성되어 미디어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룹 팀랩은 디지털 디자인계의 구루(Guru)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이 빛으로 그려내는 세계는 환상적이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 변하고 반응하며 테크놀로지와 아트가 결합한 그야말로 신세계를 만들고 있는 일본의 팀랩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 중 하나다. 동경의 미래관의 설치물도 밀라노 엑스포도 팀랩이 기획 및 설치했고 2020년 동경 올림픽 개폐막식 쇼도 팀랩이 진행한다.
 
/도쿄=안재영
 
미국, 유럽, 호주, 아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팀랩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수학자,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예술가가 모여 디지털로 그림을 그리는 울트라 테크놀로지스트 그룹이다. 모리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 팀랩 보더리스의 전시 관련한 해시태그와 전시의 팔로워가 수 십 만개 이상이다.
 
팀랩은 내 안의 창의성을 일깨워 작품으로 만들고, 친구, 연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끝도 없이 떨어지는 디지털 폭포는 사람들이 다가가면 흐르는 방향을 바꿔 새로운 형태의 폭포가 된다. 모든 작품은 첨단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졌지만 모티브는 숲과 폭포, 바다 등 자연에서 왔다. 물결이 일렁이는 벽에 손을 대면 물고기 수만 마리가 손을 감싼다. 찻잔을 들면 꽃이 무한히 피어난다. 관람객들은 디지털로 조성된, 문자 그대로 인위적인 예술 공간에서 자연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느낀다.
 
/도쿄=안재영
팀랩 작품 하나하나에는 철학을 담아 디지털 기술로 예술, 수학, 과학, 기술 모든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인간의 소통, 평화, 공존을 주요가치로 자연의 위대함을 부각해 인간의 유한함을 드러낸다. 팀랩은 기본적으로 보더리스 월드(Borderless World), 버터플라이 하우스(Butterfly House), 애슬래틱 포레스트(Athletics Forest), 크리스털 유니버스(Crystal Universe), 미래 공원(Future Park), 램프의 숲(Forest of Lamps) 등의 주제를 갖고 구역 구역으로 나뉜 공간에는 50개에 달하는 디지털 인터랙티브미술 작품이 포진된다.
버터플라이 하우스 공간은 프로젝터로 살아 있는 듯한 수백 마리의 나비를 표현한다. 예술 작품과 교감하는 공간으로, 벽을 손으로 터치하면 나비가 사라진다. 경계 없는 군접 작품 속 나비는 디지털 캔버스 밖으로, 다른 작품으로 넘나들며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비는 '틀'을 허물고 작품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녹화 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모든 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된다. 나비는 다른 작품에 꽃이 피면 날아가 앉는 식으로 모든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관람객이 손으로 만지면 나비는 생명을 잃는다. 버터플라이 하우스를 지나면 플라워 포레스트(Flower Forest: immersed and reborn)란 주제로 꾸며진 공간이 등장한다. 미술관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사방에서 컬러풀한 조명을 비춰 관람객의 몸에도 물감처럼 다양한 색이 물드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도쿄=안재영
 
주제마다 작품이 다르고 또 관객과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하면서 같은 작품도 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들의 철학을 반영한 대표작품 <Peace Can be Realized Even Without Order>은 홀로그램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각 인물이 움직이고 소리를 내다가 관람객이 가까이가면 인지하고 동작을 멈춘다. 현대사회는 사람 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져 무질서하지만 평화로울 수 있다는 줄거리를 가져다주는 대목이다.
 
팀랩 보더리스 전시공간에서 소리는 몇 가지 특징과 움직임으로 지배한다. 첫째는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다. 음악에 따라 빗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깔려있고, 이에 맞춰 작은 전구들이 춤을 춘다. 둘째, 바람에 부딪치는 풍경 소리. 궁중 전통 음악. 무신들의 칼춤이 상상되는 사운드처럼 동양적인 선율이 들린다. 세 번째 특징은 사운드마다 스토리가 있다. 주로 결핍에서 꿈을 향해 가는 것처럼 점점 풍성해지는 음악이고 이 모든 사운드가 모여 각 예술 작품마다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쿄=안재영
 
더불어 팀랩 보더리스전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여를 유도하는 테마파크 전시다. 빛이 사람의 손길에 반응하고 흐르는 물길에 사람이 서있으면 물은 사람을 비껴간다. 관객이 꽃에 손을 대면 꽃은 이내 시들어버린다. 사람의 손길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다가 이내 시들었던 꽃이 다시 살아난다. 예술 작품이 놀이가 되어 온몸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이 아이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다. 거대한 풍선이 가득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바닥도 푹신하다. 상상화 그림처럼 나는 인어가 되고 물고기는 하늘을 나는 그림이 된다. 내가 방금 그린 그림이 아쿠아리움의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고 다닌다. 우리의 상상이 실현되는 곳이다.
 
디지털 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꽃의 숲에 가면 꽃이 피고지고 다시 봉오리 맺는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 자세히 보면 같은 장면은 하나도 없고, 모두 조금씩 다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숲이다. 꽃잎, 새, 자연의 공명으로  가득하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꽃·나비·새·숲·폭포 소리가 황홀하고 신비롭다. 빛으로 그린 무릉도원에 온 듯하다. 자연스레 경계심이 풀어지며 디지털 꽃밭에 몸을 맡기게 된다. 오감이 이 디지털 세계에 홀려서 하염없이 머물게 된다.
 
/도쿄=안재영
 
공간의 바닥과 벽에 3D 비디오 매핑 기법으로 표현된 자연은 꽃잎이 피어나고 시들었다 다시 꽃봉오리가 되는 등의 동작이 반복되지만, 단순한 반복 재생이 아니다. 실시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관람객과 상호 작용한다. 벽에 흐르는 꽃을 만지면 나를 중심으로 주변의 꽃잎이 피어올라 더 풍성해진다. 영상은 계속 바뀌고, 절대 같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다.
 
작품이 관람객에 반응하니,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공동 운명체가 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반응하며 피고 지는 꽃, 날아오르는 나비, 흐르는 폭포 등을 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서로 바라보며 웃게 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공존해야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다. 
 
미래 공원은 테이블에 앉아 문어, 물고기, 상어를 직접 스케치해 스캔하면, 벽을 꽉 채운 디지털 아쿠아리움에서 내가 그린 문어가 떠다닌다. 과일로 가득 매핑 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그 속도와 세기에 반응해 과일이 팡팡 터지기도 한다. 팀랩이 그리고자 했던 미래 공원의 모습이다.
 
램프의 숲은 거울 방에 수 천 개의 LED 조명이 설치돼 있다. 무한한 램프의 숲이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숲이 되고 가까이 다가가면 램프가 밝게 빛나면서 옆에 있는 다른 램프로 그 색들이 옮겨간다. 램프들은 매우 규칙적이고 정적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입체적으로 확장되고 반사된다. 한 번에 20여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소규모 공간으로, 램프가 주기적으로 빨강, 파랑, 보라 등으로 바뀌어 장관을 이룬다.
 
/도쿄=안재영
 
흐르는 물 위에 붉은 꽃잎이 가득 떠 있다. 이곳은 폭포 속 동굴. 발을 담가보지만 젖기는커녕 물줄기가 오히려 길을 내준다. 발을 내딛는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어난다. 내가 곧 물이다. 그리고 꽃이 되는 곳에서 누군가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 누군가는 가만히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동굴을 나와 몇 발짝 옮기자 밤하늘 가득 등불이 떠 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도 등불이 켜진다. 분명 땅을 밟고 있지만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느낌과 콘셉트는 전시실을 벗어나 복도까지 연결되고, 여러 작품이 뒤섞인 듯 자연스럽게 관람 동선으로 이어진다. 작품과 관람객의 경계를 허문 디지털 아트의 이색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공간마다 전시실에 입장하면 착시 현상을 일으킬만한 거대한 디지털 작품과 맞닥뜨리게 된다.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3차원 공간에서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품에 빠져들고 디지털 아트와 교류하며 예술 속 무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마치 전시장 자체가 미로처럼 구성돼 있어 온몸으로 전시작품을 느끼며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도쿄=안재영
사실 가상현실, 인터랙티브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관람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나 디지털 전시는 기존에도 존재했다. 반면 팀랩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관객 스스로 탐험하며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 팀랩 보더리스 미술관(Mori Building Digital Art Museum: teamLab Borderless)에서 ‘보더리스’라는 표현은 예술 간, 작품과 관객 간, 그리고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걸음마다 피어나는 꽃송이, 손짓에 지저귀는 새 등에 관객들은 그야말로 작품과의 동화를 경험한다. 생각해보면 그림이나 전통적 미디어는 관객의 존재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팀랩의 작품은 다르다.
 

처음부터 사람의 반응과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작품을 변화시키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작품 자체에 몰입하며 마치 그들이 작품의 일부인 듯 하나가 된다. 마치 고도의 융복합 기술을 다루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디지털 황홀경 안에서 인간은 만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경계를 허물고 자연의 만물과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인간의 삶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물아일체적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팀랩의 에너지는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안재영은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 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됐으며,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위촉됐다.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