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함의 파리에서] 칼로 자해하고 피칠갑… 이름하여 ‘신체예술’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1.30 21:46

이탈리아 출신 ‘잔혹 예술가’ ‘신체예술 선구’ 지나 파네,
자학적 성향 이면에 환경오염 걱정하는 면모 ‘이색’
‘Terre Protégée’展, 2월 23일까지 Kamel Mennour 갤러리
생태계 위기 지적한 60년대 설치작품 재현, 작업 초기 회화도 걸려
 

< Acqua alta/Pali/Venezia > 250x600cm 12 Elements in Duralinox, Metal Tray, Muddy Water, Lettering Painted on the Floor, Walls and Ceiling 1968-1970 /©ADAGP Gina Pane, Courtesy Anne Marchand and kamel mennour, Paris/London
 
자신의 몸을 바탕지로 삼아 자학하는 폭력적인 예술로 대표되는 지나 파네(Gina Pane, 1939~1990). 그는 1960~7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체 그 자체를 소재로 하는 보디아트(Body Art)의 선구자다. 파네에게 캔버스는 다름 아닌 몸이었다. 정치 이슈부터 페미니즘,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직면한 공동 관심사를 스스로의 고통을 통해 표현했다.
 
피부와 피는 예술 재료가 됐고 신체의 강인함과 연약함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도구로 작동했다. 특히 극단의 자해에서 비롯되는 부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면도칼로 피부를 베거나 타오르는 불에다가 맨몸을 지지곤 했기 때문. 파네는 자기 초월적 의지로 신체적 고통과 이를 감수하는 인내를 수행하며 관람객의 감정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액션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파네는 이를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사진을 통해 그때의 감정적 깊이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일회성과 현장성이 강한 퍼포먼스 특성상 기록 사진은 작품과 동일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념 예술들이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되기 시작하며 파네의 작품도 대중에 점차 알려졌다.
 
1973년 11월 밀라노 Diagramma 갤러리에서 퍼포먼스한 액션 < Azione Sentimentale >을 기록한 사진. 팔에 장미 가시를 박고 손바닥을 면도칼로 그어 피가 흐르는 모습. 왼편에는 해당 액션의 드로잉. ©ADAGP Gina Pane, Courtesy Anne Marchand and kamel mennour, Paris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Azione Sentimentale>(1973)에서 파네는 신부를 연상하는 새하얀 옷을 입고 한 손에는 부케같이 생긴 흰장미꽃다발을 들었다. 이내 장미 가시를 뽑더니 자신의 팔에 일일이 박았다. 그리고 남은 한 손은 면도칼을 꽉 쥐어 떨어지는 피로 부케를 빨갛게 물들였다. 당시 이 액션은 여성 관람객에게만 공개됐는데, 여성의 나약함은 오로지 동성끼리만 공유되고 경험될 수 있다는 작가의 뜻이었다.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언제나 피칠갑이었던 것은 아니다. 결의를 지닌 가학 행위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동시에 파네는 드로잉, 회화,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이어갔다. 가장 즐겨 쓰는 재료는 신체였지만 흙, 쇠, 나무, 알루미늄, 펠트를 소재로 조각과 설치 작품을 많이 남겼다.
 
2012년 열린 개인전에서 재현한 < Terre Protégée 1 >의 설치 전경. /©ADAGP Gina Pane, Courtesy Anne Marchand and kamel mennour, Paris
 
사도마조히즘적인 면모만 보면 쉬 믿기 힘들지만, 파네는 자연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지닌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환경 파괴와 산업 개발, 무분별한 도시 확장 등으로 인한 지구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에 주목하고 이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땅’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는데, 환경이 오염돼 녹지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는 재난적 위기를 끊임없이 알리며 생태학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Terre Protégée>(1968~1970)는 행위와 설치가 혼합된 연작이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파네는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밭에다가 마(麻)로 만든 벨트로 묶인 120개의 나무 구조물을 만들어 설치했다. 그런 다음, 나침반으로 방향을 정해 각 나무 블록 아래 씨앗을 심어 지구의 풍요로움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땅 위에 팔짱을 끼고 누워 환경오염, 즉 자연을 향한 침략을 막아낸다는 의미의 액션을 행한 뒤, 돌무더기를 쌓고 작가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 작품명을 땅에 새겼다. 
 
(좌)< Untitled (n°20) > 146x113cm Oil on Canvas 1962-1965, < Souvenir Enroule d'un Matin Bleu > 8x90x30cm Blue Felt, Wood, Aluminium 1969 /파리=윤다함 기자
 
1960년대 초중반 파네는 회화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2차원의 평면은 실험적이고 전투적인 그에게 비좁고 지루했다. 이후 파네의 이러한 열망은 조각과 설치로써 표출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관한 시각을 나타낸 조각 <Acqua alta/Pali/Venezia>(1968~1970)는 흙탕물 위에 천장에 닿을 만큼 높다란 12개의 금속 막대가 꼿꼿이 서 있는 다소 괴이한 생김새다. 이는 베네치아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 위로 머리를 내밀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어린 시절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보고 자란 하늘의 푸른색을 표현한 <Souvenir Enroule d'un Matin Bleu>(1969)은 지나 파네의 작품 중 드물게 장식적인 면이 부각된 설치물이다. 
 
모래밭 가운데 작은 흙밭이 있다. 그 위에는 나무 갈퀴가 놓여있어 경작이라도 하라는 것 같은 무언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실제로 지나 파네는 이 땅을 활성화하라는 글을 대중에게 남겼다. < Stripe Rake >(1969)의 재현과 < Stripe Rake >의 드로잉. /파리=윤다함 기자
 
생전 대지(大地)를 주제로, 사랑받고 축복받은 지구, 그러나 동시에 파괴돼 가는 지구를 염려하고 걱정했던 작가의 행보를 보여주는 전시가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생태계의 위기를 꼬집는 조각, 1960~70년대 행한 액션을 기록한 아카이브와 더불어 작업 초창기 회화작품도 내걸렸다. 잔혹 예술로 익숙한 지나 파네의 색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월 23일까지 Kamel Mennour 갤러리(47, rue Saint‑André‑des‑Arts)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