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Art] 말하지 않아도 다 보여요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1.25 18:37

프랑스 출신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
디테일 생략함으로써 더욱 구체적인 인물상 구현…
2월 15일까지 313아트프로젝트 성북
 

한 인물을 두고 두 작품을 만들었다. 작고 세밀한 나타샤와 추상적인 나타샤. (좌)< Nataša> 13x15x15cm Silver 2018, < Nataša> 108.3x63x72.5cm Aluminium, Polyurethane Paint 2018 /아트조선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형상은 지우고 물리적인 존재의 근원에 자리하는 무형의 본질을 현실로 불러내어 작품에 반영하는 거죠.”
 
어렴풋이 윤곽만 드러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다 보인다.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56)은 외형을 재현하기보단 인물의 캐릭터와 태도 그 자체를 구현해내는 데 집중한다. 작품 모델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해 눈, 코, 입 같은 디테일을 생략하고 지우지만 오히려 인물의 존재감은 더욱 짙어진다. 추상적인데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작가는 카본, 알루미늄, 은(銀), 합판 등 여러 소재의 작품에 공업적 요소를 결합해 우리 시대상을 비춘다.
 
< Marc > 210x68.8x41.7cm Carbon, Polyurethane Varnish 2018 /아트조선
 
작품 모델로 삼는 인물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오랜 친구나 혹은 우연히 알게 된 낯선 사람이 대부분. 작품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태도, 작업 과정에 취하는 포즈를 토대로 간결한 실루엣으로 그려내는데, 한 인물을 다른 크기와 선명도의 조각으로 구현, 다채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대상을 표현한다.
 
최근 작업한 <Nataša>는 실제 작가의 지인인 ‘나타샤’를 조각한 것. 나타샤는 두 다리를 쩍 벌리고 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하이힐을 신은 듯 높고 날카로운 발등에서 여성인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조신하지 못한 자세로 수트를 입고 있어도 영락없는 여자다. “현대 여성에게는 이런 포즈가 자연스러워요.” 요즘 시대의 여성상을 담았다.
 
(좌)지난해 인천공항에 설치된 공공 미술 조형물 < The Great Mobiles >,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가진 개인전에 내건 작품 중 하나. 맹렬히 달려오는 말들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 Le Carrosse > Steel, Acrylic Paint, Polyurethane Varnish 2009 /313아트프로젝트·©Veilhan
 
한국에서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설치한 대형 모빌 작품 <The Great Mobiles>로 익숙한 작가다.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뜨린 길이가 무려 18m가 넘는 초대형 공공 미술품으로 공항이용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렇듯 그는 공공미술과 야외 조각에도 관심이 많다. 그를 프랑스 대표 조각가로 부상하게 해준 베르사유궁전에서의 개인전(2009)에서도 궁전 앞 광장, 정원 등에 대작을 걸어 큰 호응을 받았다. 그게 공항이든 궁전이든, 혹은 밖이든 안이든 베이앙은 주변과 이질적인 듯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의 조각들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니면서도, 작품이 놓인 공간과 조화를 꾀하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재료 본연의 특유성을 강조해 관람객은 자연스레 작품과 공간에 동화된다. 작품의 외형과 재료에서 오는 색감과 질감, 형상은 전시장과 하모니를 이룬다.
 
(좌)푸른 들판 한가운데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 Rays >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자리하고 있다. (우)이번 전시에 걸린 < Rays >는 기존 시리즈를 실내용으로 축소한 버전. /©lennby·아트조선
 
베이앙이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이후 첫 개인전을 한국에서 열고, 20여 점의 신작을 공개한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건축과 음악, 미술을 융합해 시각 예술의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이 걸린 공간 환경을 재구성하는 본업으로 돌아왔다.
 
이번 출품작 중 하나인 <Rays>도 주목할 만하다. 가느다란 금속 막대가 교차 배열된 형상의 이 시리즈는 본디 들판, 공원 등 야외에 설치됐던 대작이었으나, 이번에는 이를 1m 높이로 축소해 실내로 들여왔다. 작가 또한 “가정에 놓을 수 있는 크기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평면적 개념인 드로잉에 3차원 공간의 특성을 부여하고 입체적으로 실현한 작품으로 광학기기나 철창을 연상한다. 베이앙이 지난 5년간 몰두한 이 연작은 키네틱 아트나 옵아트를 떠오르게 한다. 관람 중 가벼운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2월 15일까지 313아트프로젝트 성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