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Art] 벗고 까고 내보이고… “이 정도에 놀라지 마시라”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01.18 18:14

英 게이 듀오 ‘길버트앤조지’ 국내 첫 개인전
시뻘건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섬뜩”
성적 이미지 통해 사회적·종교적 메시지 암시
 

< Beardnest > 151x190cm Mixed Media 2016 /리만머핀
 
그림 폭이 2m가 넘어 한 벽면을 메울 만큼 크다. 그 큰 화면을 커다란 시뻘건 두 얼굴이 뒤덮다시피 하고 있으니 보는 이로서는 흠칫할 수밖에. “대체 이게 뭥미(뭐임)?”
 
길버트(Gilbert·76)와 조지(George·77) 두 작가가 국내 최초 개인전을 열었다. 둘은 1967년 런던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교에서 만나 길버트앤조지(Gilbert & George)를 결성, 지금까지 50년 넘는 시간을 함께 작업을 이어온 듀오 작가이면서 실제 커플 사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과감하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으로 매번 논란을 일으켰다. 남성 성기를 연상하는 이미지는 기본, 아예 텍스트로 대놓고 ‘SEX’ ‘MONEY’ ‘SUCK’ 따위를 적어놓기도 한다.
 
조각상 분장을 하곤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 < Singing Sculptures >의 모습. /©Gilbert & George
 
이들이 일약 스타 작가로 급부상한 것은 50년 전의 일. 퍼포먼스 <Singing Sculptures>(1969) 덕분이었다. 당시 둘은 멋들어진 정장을 빼입고 얼굴과 손 등 피부가 드러난 부위에는 금색 페인트를 뒤집어쓰곤 단상에 올라 로봇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노래를 불러댔다. 때론 서 있거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감쪽같이 조각상 행세를 해놓곤 인간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요즘에야 유럽 거리나 뉴욕 타임스퀘어에만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퍼포먼스지만, 반세기 전에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이 퍼포먼스는 길버트앤조지의 첫 번째 성공이자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친 상징적인 작품으로 기록된다.
 
놀라지 마시라. 길버트앤조지에게 이 정도 노출은 약과다. < Bloody Mooning > 337.8x567.9cm 1996 /리만머핀
 
영국 소설가이자 길버트앤조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마이클 브레이스웰은 자신의 책 ‘What is Gilbert & George?’(2017)에서 이 괴짜 노장 듀오에 대해 “그들은 파괴와 광기 어린 편집증적 세계를 마치 꿈처럼 보여준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 출품작 ‘The Beard Pictures’ 시리즈는 브레이스웰의 설명과 잘 맞아떨어진다. 듀오는 새빨간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를 강렬하고 험악하게 묘사한다. 망가진 미학과 가치가 뒤바뀐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은 광적인 표상과 극도의 심각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단순히 야릇함이나 기괴함이 전부는 아니다. 선정적이고 괴상한 이미지에 첫눈을 빼앗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 등 진중한 어젠다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주거품, 꽃, 철조망 등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노장 듀오의 상징적인 수염이 화면 중심부를 차지하거나, 거리의 표지판, 그라피티, 단풍잎이 혼재돼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변형과 도시 환경의 격변,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향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이미지들이 대부분 듀오가 동네 산책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라는 것. 50년 넘게 살고 있는 동네를 매일 같이 산책하며 본 단풍잎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에 반영했다. 
 
< Vote Beard > 190x226cm Mixed Media 2016 /리만머핀
 
50년 전에는 살아있는 조각으로 분했지만, 이젠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작품에 넣는다. 그러나 사진가로 불리는 것은 거부한다. 사진을 ‘조각’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조각가로 불리길 원한단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을 모아 합성하고 컬러링한 콜라주 작업을 볼 수 있다. 에디션은 없고 작품은 모두 한 점씩이다.
 
실감 못 한 그들의 나이를 뜻밖의 대화를 통해 새삼 느꼈다. “길버트앤조지는 왜 방한하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고령으로 장시간 비행이 부담스러웠던 듯해요.” 3월 16일까지 리만머핀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