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1.11 20:36
마이클 스콧, 옵아트(Op Art)적인 동심원·줄무늬 패턴의 그림
착시 효과에 울렁증 일기도…
‘Circle Paintings’展, 2월 16일까지 파리 Xippas갤러리

크고 작은 원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뱅글뱅글 반복되는 간단한 패턴이 흥미로워 계속 봤더니 눈앞도 삥글삥글 함께 돈다.
과녁을 연상하는 동심원 그림은 미국 출신 작가 마이클 스콧(Michael Scott·61)의 작품이다. 1980년 후반 무렵 작업을 시작한 때부터 동심원을 그린 서클 페인팅 시리즈와 가느다란 줄무늬 패턴의 라인 시리즈에 천착해왔다. 추상화의 요소부터 개념미술과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국 미술에서 유행한 주요 트렌드를 기조로 해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받아왔다.

되풀이되는 무늬 탓에 계속 들여다보면 어지럼증을 유발하거나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옵아트(Op Art)를 떠올릴 수 있지만, 스콧의 패턴은 단순히 옵아트라고 단정 짓기엔 정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탄생했다. 언뜻 모든 선의 모양이 똑같아 보여도 저마다 선의 굵기와 여백의 너비는 미세하게 조금씩 다르다. 그의 기하학적 문양은 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한때 그는 완벽주의적으로 정확성을 추구하며 패턴의 굵기와 너비를 하나하나 계산해 그리기도 했다.

1988년부터는 무채색의 라인 시리즈를 새롭게 전개했다. 검은 줄과 하얀 줄을 번갈아 그린 이 연작으로 스콧은 스타작가로 급부상했다. 당시 뉴욕 화단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토니 샤프라지(Tony Shafrazi)를 만나 그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심지어 전시 오프닝 전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특히 스콧은 이때 동일한 크기의 라인 작품 아홉 점을 연이어 걸어 착시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품 설치 방법을 택하는데 이는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한 줄 한 줄의 너비를 1%씩 넓혀 그린 그림이었는데 이를 연속으로 보다보니 우스운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당대 유명 아트컬렉터이자 출판계 거물 사무엘 어빙 뉴하우스 주니어(Si Newhouse)가 부인과 함께 스콧의 해당 전시를 찾았는데, 부인이 그림에 울렁거림을 느껴 한동안 앉아있어야 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며 스콧의 작품 또한 화제가 됐다. 이후 작가는 1990년대 들어 무채색이었던 라인에 컬러를 더해 경쾌한 색감의 작업을 이어갔다.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그룹전 'Gambler'(1990)에 출품하기도 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아갔다.

그러나 이후 비현실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며 서클 페인팅이나 라인 작업을 돌연 중단했다. 그러면서 이전 작업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유아용 그림책이나 만화책에 나올법한 그림을 그리는데, 이 시기, 작가는 형광 스프레이로 화려한 색감을 살려 과자집(Gingerbread House) 따위를 그리며 본격적으로 팝아트를 추구했다.

외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작품에 라인이 다시 등장, 이전과 같이 줄무늬가 되풀이되는 무채색 라인 작업에 몰두했다. 다만, 몇 년 전과 달리 변화한 양상을 보였다. 엄격하고 완벽한 라인을 추구했던 예전과 달리 엇나가거나 비뚤어진, 보다 ‘인간적인’ 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스콧은 다시 서클 페인팅과 라인 시리즈를 고수해오고 있다. 2009년부터는 색채를 도입한 라인 작업을 재개했다. 그는 이때 또 한 번 이전에 고집하던 완벽주의적인 규칙을 부정한다. 수학적으로 수치상 오차가 없도록 일일이 선의 간격을 계산하며 강박적으로 작업했던 그였지만 이젠 즉흥적으로 작업하고 있단다. 다소 너저분할 정도로 자유로워 보이는 작업도 있지만 여전히 정교하게 그려내는 작품도 병행하고 있다.

30년 전 오차 없이 완벽하던 마이클 스콧의 동심원을 오늘날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파리 Xippas갤러리에 스콧의 서클 페인팅 신작이 내걸렸다. 알루미늄 패널에 에나멜페인트로 그려 색감이 더욱더 또렷해 실물처럼 다가온다. 이번 신작은 밝고 다양한 색채로 재해석돼 무채색 버전과 달리 착시 효과가 좀 덜하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2월 16일까지.
Copyrights ⓒ 조선일보 & 조선교육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