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2.07 21:52
이동기, 2015~2018년 근작 6점 선봬
맥락 없이 널린 이미지들의 중첩… ‘절충주의’ 시리즈,
인쇄망점과 픽셀로 구성된 ‘추상화’ 시리즈 등
1월 19일까지 피비갤러리
“하위문화로 취급되던 만화와 그에 반해 ‘하이아트(High Art)’라 칭송받는 순수미술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싶었죠.” 대중문화와 예술의 간극이 크던 때에, 아니 대중문화라면 먼저 천시하고 보던 때에 이동기(51)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작가의 작품세계가 태동하던 1990년대 초반, 이때는 매체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예술형식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동기는 대중문화 속에서 쉽게 소비되고 유통되는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만화적 이미지와 캐릭터를 캔버스로 끌고 들어왔다. 이를 직접 차용하며 대중문화에 뿌리를 둔 예술임을 그림 전면에 대놓고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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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미지를 회화에 도입한다는 것, 그건 금기와도 같던 시대였다. 작가는 기존 만화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캐릭터 ‘아토마우스’를 만들어낸다. 미키마우스와 아톰을 합성해 만든 혼성 이미지로, 1993년 탄생한 뒤, 이동기가 국내 팝아트를 선구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해준 그의 대표 캐릭터. 아토마우스는 사회적 기호와 맥락을 암시하는 여러 상황에서 묘사되고 활용되며, 대중문화를 대변할 뿐 아니라 현대미술의 주요한 이미지로도 꼽힌다.
이렇듯 이동기는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동시대적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정작 그의 회화는 특정한 내러티브와는 무관하며 각 요소간의 이해관계도 성립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멀티미디어나 디지털 매체로부터 오는 무수한 시각 이미지와 사회로부터의 자극은 작가가 바라보는 사소한 풍경과 중첩돼 별 의미 없이 병치 되곤 한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회화를 ‘절충주의(Eclecticism)' 시리즈라 명명했다. 순수미술과 순수미술의 바깥 영역 사이의 의문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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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주의 회화는 상이한 이미지들이 중층적으로 축적된 레이어드 페인팅. 대량 소비문화와 서브컬처가 결합돼 다양하면서도 이질적인 요소가 한데 뒤섞여 절충주의 시리즈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서로 충돌하고 또 중첩되는 방식을 통해 오늘날의 문화현상과 현대사회의 단면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문화와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이를 단순 재현하는 것이 아닌, 만화, 광고, 인터넷에서 모더니즘 회화, 추상미술 등 다채로운 시각적·철학적 요소를 빌려와 이들이 하나의 복잡한 층위를 이루는 양상을 화면에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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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2015년부터 2018년은 이동기의 방법론적 특질이 본격적으로 화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개인전 <이동기 : 2015~2018>에 절충주의 시리즈와 추상화 시리즈 대작 6점이 걸렸다. 오래된 신문이나 만화 따위를 확대해 망점과 픽셀로 구성한 추상화 시리즈는 절충주의 시리즈와 접점을 공유하는 또 다른 연작. 절충주의 회화와 추상화를 번갈아 응시하면 불현듯 만화경으로 사물을 보고 있는 듯한 착시에 빠진다.
이동기의 화면을 어지럽힌 여러 개의 차원과 그들이 배열된 논리, 혹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그 둘의 불분명한 영역을 오가는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월 19일까지 피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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