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Art] 황형신, 가구를 건축하다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8.11.23 19:36

구조적 조형의 아트 퍼니처 ‘레이어드-스틸’展
 

유려한 곡선을 살린 테이블은 물결치는 모양으로도, 원형으로도 얼마든지 재조립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표면의 격자무늬는 달궈진 인두로 눌린 자국이며, 미세한 구멍은 폴리프로필렌 판재가 녹으며 생긴 흔적이다. < Layered-PP Table >(2018) /지갤러리·아트조선
 
황형신(37)은 화려하기보단 투박해도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만든다. 폴리프로필렌(PP) 판재를 겹겹이 쌓아 압축해 모양을 잡고 달군 인두로 그 표면을 눌러가며 다듬는다. 그러면 판재가 녹아들며 서로 엉긴다. 그리고 더욱 더 단단해진다. 석제나 목제면 모를까 첫 감촉에 플라스틱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견고함이다. 
 
작가는 PP 보드를 층층이 쌓아 만든 의자, 스툴, 테이블 등을 선보여 왔다. PP는 일상용품에 흔히 쓰이는 재료로 플라스틱의 한 종류. “이삿짐박스 아시죠? 그걸 이루는 소재에요. 판재 안이 뚫려 비어있는 형태라 이를 뜨거운 철판으로 지지면 구멍이 송송 난 것처럼 보여요.”
 
‘Layered-Steel’ 전시장 전경. /지갤러리
 
작업 초창기에는 골판지를 썼는데, 그보다 견고함과 내구성을 높이고 싶어서 찾은 것이 PP 보드였다. 골판지와 생김새나 질감이 비슷하면서도 내구성은 훨씬 강하다. 서로 맞물려 짜인 폴리프로필렌 판재는 돌과 쇠만큼 딴딴해진다. 
 
그는 이렇게 PP 보드를 겹치고 포개고 쌓아 구조적이고 건축적으로 조합한 ‘레이어드(Layered)’ 시리즈를 이어왔다. 판재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 앉고 받치고 기대는 기능이 부여된다. 건축재가 각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때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이라면, 황형신의 작업은 가구를 건축하는 과정인 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다양한 조형의 건축물이 지어지고 허물어지는 광경을 떠올리곤 했다. 이러한 어릴 적 기억의 도시 이미지에서 황형신의 작품은 비롯됐다. 벽돌이나 콘크리트 잔해 따위를 주워와 단조로운 형상의 가구를 만들던 초기 습작부터 오늘날 골판지, 폴리프로필렌 등을 사용한 구조적인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조형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황형신이 H빔을 연상하는 < Layered-Steel Zinc Chair >(2018)에 앉아있다. /아트조선
PP에 황동이나 철재를 덧대는 등의 변주를 가하며 꾸준히 발전시켜온 연작명 ‘레이어드’에 이번에는 ‘스틸(Steel)’을 덧붙였다.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레이어드-스틸’이 내달 21일까지 지갤러리에서 열린다. 폴리프로필렌을 빼고 아예 스테인리스나 인산염 피막을 입힌 금속, 징크로 도금한 스틸 등을 소재로 한 신작을 내놨다. 철재 용접 부위를 숨기지 않고 노출해 재료의 물성과 자연스러움을 살린 의자, 스테인리스로 제작해 매끈하고 깔끔한 스툴 등을 만날 수 있다. “제 작업에서 ‘쌓기’를 빼놓을 순 없지만, 단순히 쌓는 것만이 핵심은 아닙니다. 쌓되 균형과 조화를 이룬 결합이 관건이죠.”
 
황형신은 홍대 목조형가구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후, 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파리 호텔드랭드스트리, 베이징 중국농업박물관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