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 꼬집는 ‘풍자객’ 쥐안치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8.11.20 22:05

위트 있는 풍자, 그 안에 뼈가 있다
국내 첫 개인전 ‘A Missing Policeman’展
특유의 은유적 해학성 드러난 영상 작품 5점… 내달 9일까지

 
비판적 시각의 실험적인 영상으로 현대 사회를 사유해온 중국 출신의 실험 영화감독 쥐안치(JU Anqi·43). 그는 매서운 풍자객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를 오가며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해학성을 잃지 않는 특유의 작품으로 각광받는다. 특히 위트와 유머러스함을 요소요소 적시적소에 배치해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이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또한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출 방식과 거침없는 카메라 움직임을 바탕으로, 현실과 사회 구조를 은유적으로 다루며 현대인의 공허함과 아이러니, 역사 속 개인의 고독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쥐안치 개인전 'A Missing Policeman' 전시장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쥐안치는 1999년 북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데뷔작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이 제5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발표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북경의 행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밀레니엄을 앞둔 북경의 일상과 중국의 현실을 북경시민의 반응과 모습을 통해 과감히 포착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상하이 PSA미술관, 베이징 울렌스현대미술센터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작품이 전시되며 국제 미술계가 눈여겨보는 작가로 부상했다.

쩌춘야, 왕광이, 장샤오강 등 실제 중국의 유명 비평가와 예술가들이 직접 출연, 본인의 역할로 분해 화제가 됐던 <A Missing Policeman>은 현대미술과 그 역사를 되짚는다. 배경은 1983년 문화 혁명 이후 삼엄했던 시기. 춤추고 노래한다는 이유로 연행될 위기에 처한 예술가들이 역으로 경찰을 33년간이나 가둬놓으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경찰은 갇혀있는 동안 비평가와 예술가들에게 동시대 예술에 대해 배우는데, 그 과정에서 예술에 심취하게 되며 도리어 예술가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된다는 엉뚱하고도 익살스러운 내용이다. 그 해학의 이면에는 현대미술의 폐쇄성, 서구 의존도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A Missing Policeman>이 12월 9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에서 열린다.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 <A Missing Policeman>을 포함한 대표작 다섯 점을 내걸고 한국 관람객과 마주했다.
 
중국 실험 영화감독 쥐안치. /아라리오갤러리
─ 한국에서 마련된 첫 개인전인데, 기분이 어떤지?

“<Poet on a Business Trip>으로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는데, 올해에는 이렇게 첫 개인전까지 열게 돼 영광이다. 한국 관람객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아 기쁘다.”
 
<Poet on a Business Trip>(2014)은 2002년 한 명의 배우와 단둘이 40일 넘게 중국 신장을 횡단하며 촬영한 영화로, 한 시인의 고독한 여정을 그린다. 현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대본 없이 진행되는 제작 방식을 통해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불안감을 조장한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특징이다. 촬영 후 10년이 지난 뒤에야 편집을 시작해 2015년 마침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발표되며 최우수 아시아 장편영화상을 수상하고, 그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2016년 자그레브영화제 국제경쟁 부분 대상을 받았다.
 
─ 영화가 대체적으로 어렵지 않고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지?

“난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고 그다지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내 주변 모든 것은 천편일률적이었고 난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이해를 표현하고 싶었다. 창작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예술 형식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예술인지 아닌지조차도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나만의 길을 따라가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
 
(위)< Poet on a Business Trip > 103minutes Single-channel HD Video 2014, <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 > 50minutes Single-channel HD Video(Originally Shot in 16mm Kodak Eastman Film) 1999 /아라리오갤러리
 
─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은 첫 작품이면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좋은 성과를 낸 작품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나는 혁신적인 창작은 파괴로부터 생긴다고 생각한다. 파괴는 일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체계적인 학습과도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작가라면 주입된 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자각성을 길러야 한다. 내 영화를 자세히 보면 형식상의 혁신을 제외하고 컷들은 대부분 규칙을 갖고 연결되며, 규칙 안에서 숨을 쉰다. 가끔 다른 감독들은 형식을 구성하는 데에만 온 기운을 다 쏟곤 하는데, 내 개인적으로 이는 허세라고 본다. 이런 건 관객이나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란 리듬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천둥이 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다.”
 
─ 이번 출품작 중 유일하게 필름으로 촬영됐다. 16mm 필름으로 촬영돼 화질이 거칠다. 필름으로 촬영한 이유가 있나?

“1999년 <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 촬영 당시는 이미 필름시대 말기긴 했지만, 북경영화학원에 다닌 사람이라면 필름 영화 한 편 찍어보는 꿈은 다 갖고 있었을 거로 생각한다.”
 
─ 불특정 행인을 붙들곤 ‘북경의 바람이 강한가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 보니 재밌는 에피소드도 겪었을 것 같은데,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그것보다도 TV 안테나에 녹음용 마이크를 달아 촬영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케이블 TV가 생기면서 TV에 붙어있던 기존 안테나가 쓸모없게 됐다. 옛날 안테나들 보면 늘렸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지 않았나. 그래서 당시 북경 단결호 도매시장에서 15위안짜리 녹음용 마이크를 구입해 이걸 TV 안테나에 테이프로 붙였다.”
 
< A Missing Policeman > 50minutes Single-channel HD Video 2016 /아라리오갤러리
 
─ <A Missing Policeman>에서는 현대예술을 주제로 삼았다. 어떤 계기로 현대예술에 대해 다루기로 마음먹었나?

“2년 전, AAC(Award of Art China) 10주년을 맞아 어워드 측에서 나를 찾아왔다. 당시에도 나는 영화와 현대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해오고 있었는데, AAC 측과의 만남을 계기로 아예 현대예술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이 영화에서 현대예술사를 다루고 현대예술가들을 직접 출연시킴으로써, 다양한 영화 언어를 형성하고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하고 싶다.”
 
─ 영화 속 경찰관은 오랜 감금생활을 거치며, 현대미술의 역사와 배경지식을 섭렵하고 예술가들에게 스승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경찰관이 예술가의 선인(仙人)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더라.

“어릴 때부터 자유를 지향해 왔지만, 경찰이라는 직업 특성상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경찰관에게 예술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했다.”
 
─ 실제 아티스트들을 본인의 역할로 직접 출연시킨 것이 눈에 띈다. 영화 출연을 제안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출연한 예술가들 모두 중국의 현대미술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다. 출연을 제의했더니 대부분 깜짝 놀라더라. 또 아주 반가워하며 기뻐하는 이도 있었다.”
 
─ 출연 배우 중 전문 연기자는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바텐더 등 일상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을 연기자로 출연시켰다.

“그렇다. 한 명을 제하고는 예술가들 본인이 출연하거나 아니면 전문 연기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었다. 뭐,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 Big Characters > 17minutes 2-channel HD Video 2015 /아라리오갤러리
 
─ 그간 독특하면서도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중, <Big Characters>는 그러한 성격이 도드라지는데.

“내 작품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Big Characters>에서 나는 개방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1968년 세계를 휩쓴 일련의 사건들의 영상들과 함께 서서히 파도에 겹쳐지며 잠식되는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사회에 내재한 유토피아의 환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사실 슬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명의 실체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Big Characters>(2015)는 사회구조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선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꼽힌다. 신장 동부의 무인지대 근처에 돌로 쌓은 거대한 문자들을 비추며 영상이 시작하는데, 이 문자들은 1968년 문화 혁명 당시 비밀 군사 공항을 위한 항로 표지로 사용됐던 것으로 문화혁명의 구호들을 담고 있다. 실제로 구글맵에서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문자들은 유토피아를 향한 당시의 갈망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을씨년스러움과 함께 과거의 상처를 전달한다.
 
─ 차기작은 무엇일지 기대된다.

“곧 <Grassland on the Sea>라는 영화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