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16 18:27
달빛 아래 대자연 풍광 담은 사진 연작 ‘Fullmoon’ 등
12월 30일까지 PKM갤러리

보름달이 뜨면 대런 아몬드(Darren Almond·47)도 뜬다. 만귀잠잠한 만월(滿月) 아래, 대자연의 풍광 한 모서리에는 작가가 서 있다. 인공조명 없이 아날로그 카메라만을 든 채.
영국 출신 작가 대런 아몬드는 태양 빛 없이 그림자와 달빛만으로 자연 풍경을 찍는 것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렇게 1998년 시작된 사진 연작 <Fullmoon>은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달이 가득 차오른 밤, 그 반사광 아래 펼쳐진 경관을 장노출로 촬영한다. 작가는 은빛으로 물든 밤의 정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순간의 궤적을 축적한다. 이를 위해 평균 15분, 최장 50분을 기다리기도 한다고. 그렇게 인공조명 하나 없이 오로지 달빛만으로 비춘 대자연을 담아낸다. 그의 사진에는 단순 풍경이 아닌 대지의 시간이 깊게 각인돼 있다.

“장노출로 촬영하다 보니 변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구름이 움직이거나 파도가 치면서 말예요. 그래서 촬영하고 보면 처음에는 생각지 못한 풍경이 찍히기도 하죠.”
‘Fullmoon’ 시리즈 중 하나인 <Above the Sea of Fog>는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1818)를 연상한다. 대자연의 황홀한 절경을 마주한 인간의 뒷모습에서 경외심이 느껴지는 회화다. 대런 아몬드 역시 자연을 대할 때마다 회화 속 인간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단다.
“대자연 앞에 서 있자면 그 위대함에 인간세계 그 이상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만 같은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19세기 풍경화의 배경 장소나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 또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며 촬영하기를 즐긴다.
대런 아몬드는 2005년 터너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이후 룩셈부르크 무담, 도쿄 스카이더배스하우스, 런던과 홍콩 화이트큐브 등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시간과 풍경, 기억을 화두로 조각, 사진, 회화 등 다채로운 매체로 표현해왔다.

흡사 시처럼 서정적인 그의 근작 10여 점이 내달 30일까지 PKM갤러리에 전시된다. 시간의 흐름과 지속성에 천착해온 대런 아몬드의 작업 세계가 매체 불문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거울 위에 아크릴로 작업한 이른바 거울회화 <Reflection Within>과 아이디어 구상 과정을 담은 드로잉도 볼 수 있다. 기차역의 디지털 플립클락(Flip Clock)을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분할된 거울 위에 숫자가 큼지막이 그려져 있다. 기차역 시계 판의 숫자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분절되거나 반전돼 있어 정확성과는 거리가 먼 숫자의 난립이다. 이 앞에 다가서면 감상자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난다. 감상자는 그리드 형식의 거울 패널이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시간과 그 메커니즘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흔히 시간은 고정불변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대런 아몬드의 작품을 통해 이를 초월할 수 있다. 그에게 시간은 절대적이라기 보단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대상이다. 시간 따위는 쉽게 넘나들고 왜곡하는 대런 아몬드와 타임슬립을 떠나보자.
Copyrights ⓒ 조선일보 & 조선교육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