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영 미술평론가(광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학과 교수,
2018 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현대에 이르러 미술은 더 이상 이성적 절대주의와 감성적 상대주의의 싸움이 아니다. 다만 예전 것들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들을 실험하는 회의주의적 장이다. 이에 반해 황용엽 작가는 이지러진 자기의 삶과 인간상에 자기만의 인간 명제를 달고 이를 끈질기게 추구해 이어나가는 ‘인간’을 그려내며 창작활동에만 매진한 예술가상의 전형을 보여준 고집 있는 화가다.
황용엽의 세월과 경험에서 나오는 인간성 추구의 그림들은 자신의 삶에 일관된 방향성을 만들어내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그가 표현하는 인간의 이미지와 형상을 보면 단지 평면작업의 테두리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율적 탐구나 소통의 기능을 합치한 현대미술의 매체를 통하여 인간의 내명정서와 현실의 삶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고자 노력하는 방법적 확대에 가깝다. 이는 작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태도로 인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가 날갯짓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세계에 꾸준히 변화를 만들어 내며 또 다른 선율의 나비효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1989년 제1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 / 조선일보
황용엽 작가는 누구인가! 1956년 화가 이중섭이 홀로 눈감고 30년 뒤인 1986년, 김광균, 박고석, 구상 등이 이중섭을 기리기 위한 미술상을 제정하기로 뜻을 모은 친구·후배 화가 24명이 작품 한 점씩을 내놓았던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자다. 황용엽은 이런저런 개인사를 바탕으로 절망과 한계상황에 부딪힌 실향민으로 그의 그림에는 쓰라림이 있다. 과거 짙은 황갈색, 삼각형 인물과 거친 선 등을 통해 슬프고 외로운 시대를 은유하며 오로지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관철하며 인간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오다 1989년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에 만장일치로 선정되며 뒤늦게 명성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 말 추상미술 경향이 화단의 주류로 자리 잡았던 한국화단에서 비극적인 현대사의 경험이 녹아 있는 형상회화를 제시한 황용엽의 예술세계는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작가의 인간상은 그가 살아온 삶과 한국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을 넘어 역사적으로 살아있는 사실 이야기다. 굴곡진 역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버텨온 한 인간의 운명 같은 삶의 흔적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을 넘으니 산, 다시 산을 넘으니 또다시 산인 것처럼 황용엽(又山 黃用燁) 화백은 인간이라는 산을 넘고 다시 넘어 88세(米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을 꾸준히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다 지금에 와 서 있다. 여러 해를 걸쳐 끈질기게 갈구하며 추구해 온 그의 그림은 그래서 삶의 기록이다.
이번 조선일보미술관 기획초대전으로 삼십 년 세월의 이중섭미술상 여정을 기념하고자 1회 수상자 황용엽의 <같은 선상에서 展>을 열어 과거 작품들과 신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어느날> 130.3x162.2cm Oil on Canvas 2018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난 황용엽은 평양미술대학을 다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홍익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화단의 시류나 화단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오직 ‘인간’을 화두 삼아 인간의 심연을 그리며 독창적인 화풍을 구현해 온 화가로서 일관성과 능력을 가늠할 정도의 오랜 경력을 지니고 있다.
황용엽이 걸어온 인간적 삶을 돌아볼 때 남북한의 미술 교육을 모두 거친 거의 유일한 생존 작가로 그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한 줌 한 줌 모아 인간이라는 작품을 조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의 비극에 휩쓸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억압당하고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담아 그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기억들은 열정을 다 바치고 난 후 피어오르는 내면의 목소리처럼 간절하게 들린다. 과거 그는 전쟁과 다양한 극한 시련들을 경험하였기에 화려하고 유려한 것들을 화폭에 담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평생을 절망과 한계상황에 부딪친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인간 시리즈를 그려온 작가다.
<나의이야기> 145.5x112.1cm Oil on Canvas 2017
최근작들을 보면 불타오르는 열정과 잿더미 속에 피어나는 인간의 순수한 선율을 전해 받는다. 작가는 자신의 어두운 기억을 털어내고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애정을 서서히 회복해 보이고 있다. 그가 계속해서 펼쳐내는 진전된 인간 그림을 대하노라면 이제 더 이상 경험에서 우러나며 보여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인간의 저 너머에 자리한 ‘바보스러움’을 수줍게 꺼내 보여 주는듯한 설렘이 보인다. 그래서 황용엽의 최근 연작 <나의 이야기>는 덧붙이지 않은 독특한 선율과 푸른 색감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미술시장과 유행을 저버린 무언가 부족한 인간의 표현력과 시원함이 작품표면 밑바탕에는 밀도가 강한 여러 가지 인간의 잔상 표현들이 깔려 있으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무언가 결핍된 회화적 분위기가 여유로움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 열정을 이렇게 회화적 자율성(自律性)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자신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 감성으로 풀어내면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우주적 의식의 변화에 자신을 내맡겨 보인다. ‘그의 인간 작품들은 우리에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그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마치 그가 찾은 미래에 그가 걷게 될 더 먼 길을 암시해주는 실마리를 보여 주는 그림 같다.
과거 작품을 정리해 보면 인간이란 소재를 갖고 그림을 그려왔고 작가는 불행하고 어두운 단면과 자유를 연상하며 화폭에 복잡하지 않은 선, 산뜻한 색, 간단한 형상을 등장시켜가며 인간을 억압하는 조형 작업을 절박하게 시도했다. 그에게 '인간' 명제는 1960년 작 <소녀와 소년>을 모태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60년대에는 칙칙한 색감으로 그가 느꼈던 고통을 담았다면 떡살의 전통 문양을 장식으로 한 1975년 작 <인간>을 보면 70년대 작품의 “인간”은 기하학적인 선을 사용해가며 회색과 갈색 그리고 무채색으로 변화됐다.
(좌)<인간> 45.5x37.9cm Oil on Canvas 1975, (우)<인간> 60.6x50cm Oil on Canvas 1975
70년대 초반에는 검은 청색과 검붉은 색으로, 중반부터는 회색과 갈색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1982년 작 <인간>을 보면 80년대에는 다양한 전통문양과 민화적 요소에 색채가 밝아지고 샤머니즘에 대한 이해를 담아냈다. 더불어 80년대 이후부터는 다양한 색감처리와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이미지가 연출되었다. 이어서 설화와 민화, 고분 벽화, 무속 신앙 등 민족 고유의 전통에 대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인간 이야기’를 펼쳤다.
1995년 작들은 오방색과 문양이 더 다양해진 인간상으로 그려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샤머니즘 요소가 다시 등장하고 어린 시절 접했던 고분벽화 패턴들이 표현되고 70년대의 <인간> 시리즈를 재해석한 2016년 작 <삶 이야기> 등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작가가 늘 '인간'이란 소재를 갖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한계상황에 부딪힌 인간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하며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점점 도식화되었으며 간결하게 시대마다 달리 표현되었다.
황용엽이 걸어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꾸준히 그려 온 그의 인간이라는 소재는 큰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꿋꿋이 살아가는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되새겨 보고자 하는 소탈한 취지에서 시작되었으나 그의 인간은 그의 삶의 체험에서 탈출한 인간의 존재와 의미가 되었고 다양한 인간의 변주된 모습으로 그의 예술적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1960년대 <여인> 시리즈는 붉은색, 황토색, 갈색 등을 활용하며 간신히 식별 가능한 개별 형상이나 인간형상을 실루엣과 얼굴을 축소 구성해 화폭에 그려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림이 근본적으로 구조화되고 색감은 푸른색과 녹색을 자주 사용하며 색채가 밝아지고 변화가 생긴다. 더불어 1970년대 중반의 인간 형상을 보면 거의 알아보기 힘들고 선으로 가득 찬 회색빛 그림을 그어내며 거의 추상에 가까워져 새롭게 화면이 등장한다. 이후 그림의 약간 밝아지고 한국 무속신앙 벽화의 영향으로 형상이 보다 구분되고 바탕으로부터는 분리된다. 더불어 생동감과 선율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옛이야기> 97x145.5cm Oil on Canvas 1991
1980년대 말부터는 좀 더 화면구성이 촘촘해졌다. 인간들의 얼굴 모습은 더욱 밝아졌고 실루엣은 더욱 섬세해지고 공간 구성은 더욱 복잡하고 움직임의 율동도 생겼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과거에는 인간이라는 명제에 집착했던 것이 <가족(Family)> <연인들(One Day Lovers)> <옛 이야기(Old Story)> 등처럼 제목도 인간애가 깃들어가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물은 풍경, 자연, 나무, 산, 도시와 함께 같이하며 서로 만나 교류가 생겨나며 전체적으로 밝아지고 다채로워진다. 그 안에 선사시대 동굴벽화들도 도안도 생성한다.
최근 들어서 황용엽은 불필요하고 복잡한 모든 것을 지워가며 1970년대 연출한 회색빛 기하학적 구조를 생각하며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에 대한 여운이 생긴 것 같다. 전체적인 구조나 형식, 인물형상이 존재하지만,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회색과 푸른색을 흰색 선으로 구조화시켰다. 작가도 이젠 어둡고 격한 감정의 기복이 없어지고 평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생겨나고 화폭이 여유롭게 변주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그의 신작들은 70년대의 색감과 유사한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로 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과거 인간의 형태에서 토속적인 문양과 패턴이 새롭게 가미되어 밝아졌다. 작가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간결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분명 느낄 것이다. 여전히 ‘인간’을 새롭게 변화하며 선들로 독립적인 화면들이 나타내며 다양한 구도와 분할된 화면에서는 각기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가 지금까지 인간을 명제로 한 작업에 나타난 표출들은 그의 관심(觀心), 그의 예술을 떠받치는 정신적인 요소일 것이다. 여기서 그가 표출시킨 인간의 모습과 화폭의 선(線)들은 요즘의 세련미보다는 순박함 그리고 그 속에 과거 우리 선비의 편안함과 정직성 그리고 선율과 순수성이 숨어 있다고 보기에 행복함과 여유로움이 돋고 즐거운 기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통 속에 숨겨졌다 생성된 마음과 생각들이 이젠 넉넉하고 평온한 인간이 되어 화면에 잘 어우러져 인간들이 더욱 시원해졌다. 그래서 이젠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훨씬 넉넉해 보이고 자유로운 향연의 인간 모습 같다.
<어느날> 90.9x72.7cm Oil on Canvas 2018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분이지만 인간의 본질은 결국 영혼이다. 그래서 본연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재창조하지 않고도 인간은 본연의 의미보다 더 많은 본질의 개연성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연구는 눈에 보이는 인간만이 아닌 내면에 나타나는 또 다른 자아가 될 수도 있으며 그 본연의 본질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용엽은 작가의 예술철학적인 정신세계를 통해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인간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황용엽의 인간은 독일의 표현주의처럼 인간 내면을 읽어내는 무거운 면도 있긴 하지만 한결같이 영감에 의하여 파악된 감정의 표출과 자아감정(自我感情)을 고양시키는 것을 기조로 하여 계속하여 인간의 참신하고 대담한 수법에 의한 예술적 변형에 특색을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황용엽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다. 현재의 작품은 작가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게 될 길을 함축한다. 격동의 세월 동안 시도했던 다양한 형태의 인간상을 그는 현재의 시선과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작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인간을 필두로 참으로 먼 길을 우여곡절 속에 돌아왔다.
그의 인생을 쏟아부어 건져 올린 회화적 조형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긴 여정을 함께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그의 인간상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 버림’의 도전이라는 것을 최근작 <어느 날>에서 복기할 수 있다. 지금의 그의 모습은 화폭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던 인간상을 화면에 흡수시키고 그 나름대로 장식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색채를 찾아 조형미를 표출하고자 의도하게 된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그냥의 있는 그대로 인간이었지만 지금 그가 담은 인간들은 기록적이면서 융합적인 학문의 요소가 마치 복선처럼 깔려있다. 누군가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다고 했던가! 그의 현재 작품은 작가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게 될 길을 함축한 인간이다.
우리는 예술에 대해 느끼는 공통점들이 있다. 예술에 대해 느끼는 것이 똑같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사유라는 것을 이용해 표현하고 해석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인들은 대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붓으로 생각하고 글씨와 그림을 그려왔으며 눈앞의 대상물과 머릿속의 이미지는 모두 점과 선으로 구성하고 호흡과 억양, 숨결, 마음의 도움으로 표현을 해왔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거기에 드러나 있는 내용이나 의미하고는 또 다른 광경을 보고 낚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황용엽 작가가 표면, 기호,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보면 미국, 유럽, 한국 예술가들의 추상적인 기법과의 유사성이 분명 존재하지만 황용엽의 추상성은 인간 형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감정을 압축되게 잘 표현한 기록이자 숨결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황용엽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실주의와 추상주의에 대한 거부 그리고 인간을 날 것 그대로 역경과 위대함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는 화가의 행보에서 드러나는 개성이다. 그래서 더욱 그 의미와 가치가 주어진다. 이처럼 그가 가지는 인간이라는 회화성에는 인간의 기술과 진수가 보인다. 인간의 솔직한 표출행위, 섬세하면서 아기자기한 율동감과 흐름, 그러면서 자유스러우면서도 절제된 그의 인간 모습에서는 보는 이에게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보이지 않은 선선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황용엽 작가만이 화폭에 담아서 할 수 있는 특유의 선들은 쉽지 않은 인간 품격과 고급스러움이 자리한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인간은 살기가 전해지고 황용엽의 자부심이 되어 선율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작가 황용엽은 여러 가지 방법론으로 인해 깨닫게 되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갈등 구조를 인간성 추구로 잘 그려나가고 그만의 조형성으로 인간을 현대화하여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답이 있다는 표현을 계속 증명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