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끼고 흐르는 한강, 시민 일상에 스며들다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8.08.21 18:58

은병수 한강예술공원 총감독 “숨은 그림처럼 감춰진 작품 찾는 재미”
여의도·이촌에 조성 ‘한강예술공원’, 25일 일반 공개

남해에서 물고기를 잡던 폐기대상 어선 ‘해춘호’가 여의도한강공원 잔디밭에 정박해 있다. 심희준, 박수정作 <한강어선이야기 셋_해춘> 9000x2400x4500mm /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
 
한강공원이 야외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한강_예술로 멈춰. 흐르다,>를 주제로, 여의도와 이촌에 나현, 권오상, 이반 나바로, 크래킹 아트 등 국내외 작가 작품 서른일곱 점이 설치돼 한강예술공원이 조성된 것.
 
다름 아닌 한강공원에 설치되는 공공예술품인 만큼 시민이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여타 공공미술작품과는 달리 앉거나 탈 수 있는 등 명확한 쓰임새와 용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곳에 작품이 숨어있어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한강의 경관을 돋보이게 했다. 출품작은 최대 3년 동안 한강공원을 지키게 된다. 한강의 ‘멈춤’과 ‘흐름’이라는 특성을 예술적 시각에서 풀어내어 국내 공공예술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강예술공원이 3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는 25일 일반에 공개된다. 한창 작품 설치 마무리로 분주한 은병수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 총감독을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만났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난 17일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만난 은병수 한강예술공원 총감독 / 아트조선
─ 프로젝트명 <한강_예술로 멈춰. 흐르다,>에서 문장 부호의 사용이 눈에 띈다. 특별한 의도가 있나?
“한강도 쉬고 시민도 쉬자는 뜻인데, 원하는 바를 한 문장에 짧게 담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마침표, 쉼표 등을 활용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면 어떨까 싶었다. 특히 마지막을 쉼표로 처리해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끝맺지 않고 여운을 남겼다. 흡사 쉼 없이 흐르는 한강물처럼 말이다.”
 
─ 본래 전공 분야가 산업디자인이다. 이번 조성사업에 본인 특기를 살린 부분이 있다면?
“산업디자인은 쓰임새가 곧 안전성과도 직결돼 정교해야만 한다. 작품의 창의성이나 아름다운 조형성이 작가의 몫이라면, 나는 작품의 용도와 쓰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번 작품들이 여타 공공예술품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용도와 기능이 있다는 거다. 시민이 앉거나 타거나 쉴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듯 작가의 아이디어가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다.”
 
─ 참여 작가는 어떻게 선정했나?
“작가에게 먼저 제안하거나, 외부 추천을 받거나, 공모로도 진행했다. 다만 국내 작가든 해외 작가든, 유명한 작가든 신진작가든 모두 동일한 방식을 통해 모집했다. 구상한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오로지 종이 한 장에 한해서 받았다. 간단히 스케치만 해서 제출하거나 종이를 글로 빽빽하게 채워 내는 작가 등 다양했다. 종이 한 장에 담긴 아이디어를 토대로 일부 선정하고 이를 다시 선정위원회의 열린 토론방식을 통해 참여 작가를 최종 선정했다.”
 
 ─ 시민 공모에서 선정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작품도 여럿 있던데.
“시민 아이디어에 예술적인 재해석을 가미해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시민과 작가의 합작품인 셈이다. <뿌리벤치> <밤 무지개> <그물망 쉼터> <써클> 등 예닐곱 점이 있다. 예컨대, <써클>은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물고기 모양의 벤치를 제안한 초등학생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 김민애 작가가 세 개의 원형 공간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반사경 안에 강아지가 등장해 시공이 다른 두 세계가 이촌한강공원에 펼쳐진다. 다양한 제스처를 취한 강아지의 시선에 따라 산책로로 유도한다. 최민건作 <컴 앤 고> 1000x1000x2500mm 스테인리스 반사경, 유화에 에폭시 수지 코팅 /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
 
─ 작품 감상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기계적으로 작품을 배치한 게 아니라 공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치게끔 설치했다. 실제로 시범사업 작품 중 하나인 <해춘호>는 63빌딩 앞에 스리슬쩍 설치해놨는데, 시민들이 지나가다가 발견하곤 인증샷을 많이 찍더라.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랄까. 생각지 못한 곳에 작품이 있음으로써 더욱 예쁘고 다정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컴 앤 고>는 갈림길 도로반사경에 강아지가 그려진 작품이다. 이처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문득 작품과 만나 반가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치 위치를 의도했다. 30m부터 200m까지의 간격을 두고 작품이 도처에 흩어져 있으니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즐겼으면 한다.”
 
─ 애초 예정보다 개장 시기가 늦춰지며 한강 인구가 많은 봄여름 시즌을 놓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교롭게도 올해 여름 무더위가 극심해서 한강 인구가 예년에 비해 많진 않았던 듯하다. 지난 3년간 조성사업 진행하면서 한강에서 살다시피 하며 깨달은 건 한강 모습이 사시사철 다르더라는 거다. 사계절은 물론 낮과 밤이 다르고 비 올 때, 안 올 때가 다르더라. 비록 봄여름은 이미 지났지만 이제 날씨도 점점 선선해질 테니 앞으로도 즐길 요소와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 총 작품수가 37점 272피스다. 눈, 비, 자외선 등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어떻게 보수·관리할 계획인지?
“건축, 소방 등 각 전문인으로 꾸려진 기술자문위와 기술지원팀이 있고, 파손되거나 녹슬었을 때 등 유사시 보수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 또한 설치할 때부터 태풍이나 홍수를 대비해 작품마다 앵커를 땅속에 깊숙이 박아 단단히 고정했다. 많은 시민이 이용하고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안전성이 중요하다.”
 
비닐봉지 질감의 홍학 20마리가 이촌한강공원에 무리지어 있다. 인간의 과잉된 욕망의 불안과 공포를 담아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이동헌作 <플라밍고> 1000x550x1600mm 합성수지 위에 우레탄 도장 /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
 
─ 작품 생애주기(1~3년) 이후엔?
“작품 수명이 그만큼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수리가 불가피해 철거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편의상 1~3년을 기준으로 작가들과 계약했다. 실제로는 수명이 3년 이상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사업추진단은 올해 해단하지만, 생애주기에 한정되지 않고 이후에도 작품을 옮겨 다른 한강공원으로까지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술작품의 순환과 공원의 확장이 목표다. 물론, 정부와 서울시의 예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우선, 이번 예술공원 조성사업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향후 계획이 보장될 수 있을 것 같다.”
 
─ 총감독으로서 기대하는 한강예술공원이란?
“프랑스의 ‘에스뚜에르(Estuaire)’라는 현대미술 축제가 있다. 낭트에서 생나제르에 이르기까지 루아르 강가 60km를 따라 작품 수십 개가 설치됐고 행사가 끝난 지금까지도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들은 그곳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싸 들고 피크닉을 오곤 한다. 작정하고 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게 아니고 심지어 그게 작품인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라. 그저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거다. 한강예술공원도 어쩌면 나중엔 예술공원이란 이름이 필요 없게 될지 모른다. 여의도와 이촌을 시작으로 한강공원 곳곳으로 작품이 놓여 시민의 삶 속에 시나브로 자리 잡길 바란다. 그곳이 예술공원인지도 의식 못 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