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 주말, 작품 어때?] 양동이 뒤집어쓰고 조각 작품 돼 보기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8.08.17 18:55 | 수정 : 2018.08.17 19:01

작가 주문대로 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으로… 에르빈 부름展

 
엉덩이를 차창 밖으로 내밀기, 물통 위에 올라서기 혹은 머리에 양동이 뒤집어쓰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작품이 된다. 단,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사항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에르빈 부름이 시키는 대로.
 
양동이 두 개가 작품의 전부다. 관람객이 직접 양동이에 들어가고 머리에 쓰면 완성된다. 테이트 모던의 소장품 중 하나인 < Double Bucket(One Minute Sculptures) > 1999 / 아트조선
 
전시장은 작가의 지시문을 따라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흉내 내는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듯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관람객에 의해 완성되는 전시 <One Minute Forever>의 풍경이다.
 
에르빈 부름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조각, 설치,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유머러스한 접근법으로 일상을 새롭게 인식게 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가 작성한 주문을 관람객이 수행함으로써 완전해지는 <One Minute Sculptures> 시리즈는 참여자에 의해 실현과 해체를 반복하며 전통적인 개념의 조각을 벗어나 새로이 정의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지시문을 보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물건을 서로의 이마, 가슴, 배, 무릎의 사이에 두고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역시 테이트 모던의 소장품. < Organisation of Love > 2007 / 아트조선
 
전시장에는 페트병, 양동이, 청소 솔, 유리창 세정제 등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이 놓여있다. 관람객은 이들을 활용해 '1분(One Minute)'이란 제한된 시간 안에 작가의 지시사항을 재빨리 이행하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야만 제대로 끝마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상적인 사물이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물론, 사진으로 남겨 1분이란 짧은 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데에 작가의 목적이 있다. 에르빈 부름은 “1분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조각이 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관람객은 사물을 작동시키는 주체이자 작품 그 자체로 분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 70여 점 중 50점가량은 영국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빌려온 것. 흥미로운 건 그 중, <One Minute Sculptures>는 테이트 모던에서 관람객이 마음껏 손대거나 심지어 파손할 수도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특히 시리즈 중 하나인 <Organisation of Love>는 중량을 높이기 위해 작가가 인위적으로 무게감을 더해놨는데, 이 때문에 지시사항 이행 중 관람객이 작품을 떨어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파손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전시장 측은 이를 대비해 세정제통과 양동이 등을 여러 개 준비해 놨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러한 ‘여유분’도 작가가 사전에 마련해놓은 것. 실제로 이번 전시 중 <Organisation of Love> 중 일부인 청소 솔이 부서져 새 솔로 교체하기도 했다.
 
< Parachute >(2017)의 지시문 중 일부. 자세히 보면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위를 따라 펜으로 다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 아트조선
 
전시장 벽이나 작품 위에 자그맣게 그려진 지시문(Instruction Drawing)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얼핏 보면 벽의 낙서 같기도 한 지시문은 에르빈 부름이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그린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연필로 먼저 밑그림을 그린 후 펜으로 따라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지시문은 밑그림과 본 그림을 달리 그려 놓은 것도 있다. 지시문 역시 엄연히 작품 일부이므로 놓치지 말 것.
 
이처럼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마음껏 만지거나 심지어 올라 타볼 기회가 또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스스로 조각이 돼 보기도 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겨 <One Minute Sculptures> 작품을 소장하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자. 내달 9일까지 현대카드스토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