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8.03 17:29 | 수정 : 2018.08.06 11:40
조각, 회화 등 현대미술품 조성 도심 속 휴양지 <베케이션랜드>
“이거 진짜 타도 돼요?”
20대 커플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주저했다. ‘탑승법’이 작품 옆에 친절하게 설명돼 있지만 그래도 미술품에 몸을 싣는 것이 영 어색했던 모양. 그러자 전시 안내원이 “조심스레 균형을 맞춰 한 명씩 올라타면 된다”며 작품 감상법을 알려줬다.
놀이공원기구인 ‘다람쥐통’ 형상을 한 박길종 작가의 <갸우뚱>은 관람객이 작품 안에 앉아 불안정한 갸우뚱거림을 직접 경험해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올라타면 관람객의 몸도 갸우뚱거리지만 앞선 20대 커플 관람객처럼 작품에 진정 탑승해도 되는 건지,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데에도 작가의 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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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에 뚱딴지같은 휴양지가 마련됐다. 여름휴가를 콘셉트로 하는 전시 <베케이션랜드>는 디자인, 회화, 조각, 공예 등 다채로운 현대 미술품과 함께 엉뚱하고도 유쾌한 경험을 선사한다.
<베케이션랜드>는 여덟 팀의 개인 작가 또는 그룹이 참여, 오로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들이 작업한 신작들로 구성됐다. 각 전시 공간 구성은 각 작가에게 맡겨 각자의 아이덴티티에 맞게 구성하게끔 전담됐다. 즉, 작가들은 전시 기간 동안 선보일 자기들만의 공간을 분양받은 셈. 휴가라는 공통된 콘셉트를 중심으로 저마다의 언어로 해석한 휴양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윤하 작가는 그간 이어왔던 ‘예쁜 쓰레기’ 연작물로 <비치용 비치>를 선보였다. 작가는 하나만 두고 보면 예쁜 오브제들을 조합해 기괴하고도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이번 작품은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튜브, 오리발, 비치 파라솔을 비롯해 죽부인, 부채가 한데 모여 이뤄졌다. 한철 사용하고 버려지거나 잊히는 소모품들이 합세해 저마다의 쓰임새를 부르짖고 있는 형국이다. 이질적이지만 아기자기한 오브제들의 조합 덕분에 깜찍한 면모도 있다.
베리띵즈와 신선혜 사진작가의 공동작 <Close your eyes and you are there>는 각자 특색을 살려 전시장 곳곳에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구성했다. 해변 등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관람객들은 각자의 지난 여행지를 떠올리며 애틋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베리띵즈는 “좋았던 기억이 일상의 에너지가 되지 않느냐”며 “일상이 여행지이자 휴양지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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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작가는 <공간드로잉 2018_심심한 상상>의 조형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통해 3차원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다층적 구조를 만들었다. 바닥과 벽면 외에 문과 전시장 외부로 이어지는 계단 등의 이동 공간에도 마스킹 테이프를 이어 붙여 전시공간을 확장했다. 또한 같은 패턴의 회화를 천장에 매달아 입체적으로 배치해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공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보이는 것 너머의 새로운 공간과 동선을 제시하며 색다른 시각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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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팅과 패브릭이란 공통분모로 뭉친 김미수 작가와 이광호 작가의 공동작품 <Plant Resting Room>은 사람이 아닌 식물을 쉬게 한다는 깜찍스러운 위트를 더해 웃음을 자아낸다. 전시장 한 가운데 자리한 하얀 매트리스 위에는 니트 옷을 입은 나뭇가지와 식물 따위가 살포시 누워있고 그 위에는 이불이 덮여 있다. 더불어 천장의 조명은 잠자는 식물들에 따뜻하고 안락한 그늘을 내어주며 디스토피아적인 형상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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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가 박여주는 다소 특이한 공간을 분양받았다. 신작 <The Shrine Within>은 암실처럼 어두운 지하 기계실에 설치돼 기계 노이즈와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어우러져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빛이 완전히 차단돼 일반 전시공간과는 차별화되는 지하 세계 같았다”며, “극적인 효과를 위해 조명을 컨트롤하는 데 신경을 썼는데 관람객들의 몰입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휴가조차도 일로 여기는 현대인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휴가란 말 그대로 쉬는 것이 목적인데, 비행기·호텔 예약 등 준비해야할 것이 많아 도리어 스트레스만 더 받게 된다는 것이 이유다. 따로 준비할 것 없이 가뿐한 몸으로 이번 주말 스트레스-프리의 갤캉스(‘갤러리’와 ‘바캉스’의 합성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9월 16일까지 플랫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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