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티스트 육근병 “변화 말고 진화”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입력 : 2018.07.31 20:55 | 수정 : 2018.08.01 10:55

6년 만의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 8월 5일까지 아트선재센터
히틀러 등 12人 담은 <십이지신상> “예술은 적당히 심각한 놀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10월 뮤지엄산 그룹전… 내년 日, 獨 등 해외 개인전

 
기자는 육근병 작가와 구면이다. 5년 전쯤 그가 모 대안공간에서 비디오아트와 미디어아트의 경계를 고민하는 그룹전에 참여했을 때 처음 만났다. 이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 다시 만난 그는 그때와 똑같았다. 머리에 질끈 동여맨 두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경기도 양평 산자락 아래 위치한 육 작가의 작업실은 아카이브 그 자체. 1990년대 전시 포스터, 리플릿, 장비 등이 그대로 보관된 것이 흡사 박물관과 방불하다. 유명 작가들의 이른바 ‘과사(과거 사진의 줄임말)’도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실 여기저기엔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얘기해온 ‘역사’가 깃들어있다.
‘생존은 역사다’展에서 선보이는 육 작가의 대표작. 흙으로 덮인 무덤 속에 깜빡이며 관객을 응시하는 눈의 이미지가 비디오로 결합된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이 영속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 6000x6500x2600mm 혼합 매체 2018 / 김연제
육근병 작가는 198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비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았다. 198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대상 후보로 선정되고,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되며 국내 미술계는 이단아의 등장에 술렁였다. 당시 카셀 도큐멘타 출품작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 = 랑데부>는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 광장 한가운데에 흙으로 덮은 무덤을 세우고 맞은편 빌딩 입구에는 대형 원주를 설치, 움직이는 눈 비디오를 각각 설치해 서로 마주한 형상이었다. 무덤과 원주는 각각 동서양을 뜻했다. 이 외눈박이 무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크기로 계속 이어져 온 그의 대표작이다.
무덤을 형상화한 대형 봉분 위에 껌뻑이는 눈 영상의 모니터가 박힌 그의 대표작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됐다. 아홉 살 소년은 나무로 지어진 남의 집 담벼락에 조그맣게 뚫린 관솔 구멍으로 그 집 마당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단다. 관솔 구멍을 가득 채웠던 소년 육근병의 눈동자는 훗날 작가 육근병의 모티브가 됐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 속 눈동자를 응시하고 작품 속의 눈은 관람객을 바라본다. 그에게 눈이란 작품 언어이자 세상과의 매개다.
그렇다면 무덤은 무엇일까? 흔히들 무덤을 죽음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육 작가는 반대로 생명이라고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무덤에 친밀감이 들곤 했어요. 무덤 속 개개인의 서사와 역사와 교감하는 느낌이랄까요. 죽어서 신체는 없어져도 정신은 계속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우리 조상들도 대대로 족보를 만들지 않았던가요? 선조의 업적 따위를 상세히 기록했죠. 조상이 우리를 오늘날 존재하게끔 해준 뿌리라는 사실을 기리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수천 년 전 고인돌에도 그러한 영속성이 담겨있다고 보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무덤 재료인 흙은 인간 신체의 회귀이자 재생이라는 지점과도 연결된다.
오랜만에 육근병 작가가 개인전을 열었다. <생존은 역사다>가 8월 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간만의 국내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 관해 작가에게 물었다.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만난 육근병 작가. 머리에 맨 두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 아트조선
- 오랜만에 국내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이다. 2012년 이후 6년 만인데, 그간 뜸했던 이유라도?
“그간 해외 전시는 계속 해왔는데 어째선지 국내와 일정이 맞지 않아 이제야 하게 됐다. 내 작품은 설치 면적도 많이 필요로 하고 다른 전시보다 예산이 좀 들어가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예산이 뒷받침돼야 전시할 수 있고 내 작품 영역도 갤러리보단 미술관 쪽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갤러리에선 판매도 병행돼야 하니 무작정 내 욕심만 차릴 수 없는 노릇이라 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되는 것 같다.”
- 간만의 국내 개인전이라 두 달이 채 안 되는 전시 기간에 아쉬움이 있지는 않나?
“아쉬움은 없다. 기간은 충분하다고 본다. 또 이번 전시 작품 포함해서 내년에 다시 일본과 상해에서 개인전 가질 예정이다.”
- 새로 선보인 신작 <십이지신상>에서 작고한 근대사 인물 12인이 등장한다. 어떻게 선정된 열두 명인가?
“모택동, 히틀러, 블라디미르 레닌, 체 게바라, 스티브잡스 등이 걸려있다. 1945년도부터 지금까지 유명 인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그중 70명을 선별하고 다시 12명을 추렸다. 인물만 놓고 보자면 아무 의미는 없다. 어떤 인물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별 신경은 쓰지 말아줬으면 한다. 내가 관심이 가는 이슈 등과 연관해 선택해봤다. 그저 나는 역사가 존재하고 그게 곧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을 뿐이다. 나는 무덤 안의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믿어왔다. 그렇듯 <십이지신상>의 열두 명도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자 한 거다.”
‘생존은 역사다’展에서 선보이는 육 작가의 또 다른 신작. 근대사 인물 12인의 영상과 함께 태아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며, 깜빡이는 외눈 이미지 영상이 서서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원형으로 배치된 열두 개 스크린에 둘러싸여 영상 속 관람객을 직시하는 눈을 통해 역사 속의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십이지신상> 8분 14초 12 채널 비디오 설치 2018 / 김연제
- 그래도 몇몇 인물에 의문점을 품게 된다. 예컨대 히틀러라든지.
“세상엔 정답이 없고 옳은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꾸 인물 그 자체에 잣대를 들이대는데 적어도 예술에서만큼은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나쁜 놈일 수도 누군가에겐 좋은 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예술이란 적당히 심각한 놀이 아니던가? 스티브잡스는 생전에 내게 도움을 많이 줘서 고마워서 택하게 됐다.”
- 스티브잡스한테 어떤 도움을 받았기에?
“그가 스마트폰 시대를 열지 않았나.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보편화되면서 동시에 카메라 같은 영상장비들 가격이 반 이상 떨어졌다. 잡스가 한 방에 정리해준 셈이다. 덕분에 돈을 많이 절약했다. 내겐 정말 중요한 인물이다.”
- 장비 욕심도 많은가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새 장비 나오면 자연스레 관심도 가고 그렇다. 보통 4년가량 쓰면 오래 쓴 것 같다. 이후엔 새 장비 사용하게 되지 오래된 것은 잘 쓰지 않게 되더라. 요즘엔 기계들이 작으면서도 성능이 좋으니까. 예전에 ENG 쓰던 시절 생각하면 감개무량이다. 그래도 오래된 기계를 버리진 않고 그대로 보관해놓는다. 가끔 ‘필’ 꽂힐 때 옛날 장비 꺼내 보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 이번 전시명도 그렇고 작업에서 역사가 늘 화두였다. 역사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인데, 과거지향적인 건 아닌가?
“나는 해답을 과거에서 찾는 편이다. 그렇다고 과거지향적인 건 아니다. 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오늘이라는 뜻이다. 지난 것을 지난 것으로만 보지 않는 이유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역사가 아주 재밌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역사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인 맹점만 짚으면 된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근본이 흔들린다.”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선보인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 = 랑데부> 설치 전경 / 육근병
- 또 다른 신작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이 계속 이어온 외눈박이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나?
“전시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크기가 달랐다. 스케일이 작기도 하고 크기도 했다. 카셀에서 할 땐 실외에서 설치하니까 6m가 넘었다. 맞은편 원주는 9m에 이르렀고. 사진에서 보면 좀 작아 보이는데, 실은 매우 컸다.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 전시한 건 3m가 조금 안 된다.”
- 일각에서는 카셀 이후 계속 반복되는 외눈박이 시리즈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변이 있나?
“이번 작품은 카셀에서의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 = 랑데부>와는 다르다. <십이지신상>과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은 각각 아트선재센터 2층과 3층에 설치돼 있지만 정확히 같은 선상에 설치함으로써 두 작품이 연계된다. 나는 변화는 싫고 진화가 좋다. 진화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변화란 본질이 변하는 것이다. 나는 본질이 변하는 것은 싫다. 또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나는 지금껏 국내에서는 이 외눈박이 작품을 단 한 번도 전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몇 군데 있지만 그건 컬렉션이지 전시는 아니니까. 지금껏 다들 사진으로만 본 거지 이렇게 실물로 접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제작한 드로잉. 2층과 3층에 설치된 각 작품은 같은 선상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돼 있음을 나타낸다.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 / 드로잉> 1170x910mm Charcoal, Pencil on canvas, 2018 / 아트조선
-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트인 등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히 한다. SNS 활동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기계와 프로그램을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비디오 작업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걸 잘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갖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먼저 댓글 달고 그러지는 않는다. 해외 작가들과 교류하는 창구로는 잘 활용하고 있다.”
- 지난해 꾸준히 서왔던 교단을 떠났다. 본래 중·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기도 했는데… 이제 전업작가로만 살 계획인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그만둔 지 꽤 됐고, 일본 도호쿠예술대학에선 객원교수였는데 그것도 작년에 그만뒀다. 그간 자식들 키워내려고 학교에 나간 이유도 있다. 이젠 다 커서 숙제가 끝난 것 같다(웃음). 전업작가로 돌아오니 너무 좋다. 오롯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봐도 내 팔자는 작가다.”
- 향후 전시 일정과 계획이 있다면?
“올해 10월 뮤지엄산에서 그룹전이 있다. 그리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일본에서 개인전을 가진다. 정확한 일자가 아직 잡히진 않았고 현재 준비 중이다. 이어서 영국과 프랑스 리옹에서 전시가 열린다. 또 내년 10~11월쯤 독일 브란덴브루크에서 개인전이 있다. 브란덴브루크 전시 준비하면서 마침 요즘 시국과 맞아떨어져 구상 중인 것이 하나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서독과 동독을 나누는 기점이 되던 곳이었다. 독일은 분단됐다가 우리보다 먼저 통일되는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 우린 통일되지 않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근래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 않나. 나는 이러한 역사를 활용해 작가의 역할을 하고 싶다. 북한사람들 120명의 눈, 우리나라 사람들 120명의 눈을 촬영해 서해에서 동해를 가로질러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에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스크린들을 걸어놓고 공중에서 빔을 쏴서 240명의 눈동자만을 쭉 걸고 싶다. 지금껏 북한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쳐다볼 기회가 없었다. 이 작품이 실현돼서 서로 소통을 선언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