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7.25 14:36 | 수정 : 2018.07.27 18:43
- 한국 전통 레퍼런스 기반으로 회화, 설치, 영상 등 혼합 현대미술
- 6월 발루아즈예술상 수상… 2007년 이후 국내 작가로는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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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엔 현대적인가 싶었는데 둘쨋눈엔 첫 판단에 회의가 들기 시작, 그러고 또 다시 보니 단번에 규정 내리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강서경의 작품이 그렇다. 서사와 정체(?)를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그의 작품에는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사유가 담겨있다.
강서경은 한국 고유의 전통을 기반으로 춘앵무, 화문석, 정간보 등 전통예술과 오브제를 차용해 작품을 전개한다. 원, 삼각, 사각 등 원초적인 도형 모양의 철제구조물과 목제프레임이 바닥에 서 있기도 벽에 기대있기도 한 현대적인 형상에서 왠지 모를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이유다.
그 때문에 관람객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본 해외 전문가들 또한 처음에는 혼란스럽긴 매한가지. “일반 현대 설치미술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라는 거예요.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낯선 색다름이 풍긴다는 거죠. 제가 한국 전통을 바탕으로 작업한다는 걸 알고서야 무릎을 탁 치더군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이 바로 한국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요.”
강서경의 작품은 얼핏 동시대적인 예술 언어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러한 ‘현대적인 모습’으로 탄생하기까지 그 배경과 시작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강서경에게 전통이란, 이를 각색하고 변용하는 것이 아닌, 옛것 그 자체를 오늘날 자신이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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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비엔날레 가면 큐레이터들이 화문석 보고 다들 이게 뭐냐며 궁금해하고 신기해하죠. 저는 또 그 와중에 ‘화-문-석’이라고 또박또박 정확히 발음하고 표기해달라고 강조해요. 춘앵무나 정간보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고유의 옛말들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건 반대해요. 우리말 있는 그대로 발음되고 구전돼야 본연의 운율이 전해지는 법이니까요.”
발루아즈상 수상작, 룩셈부르크 무담에 소장
지난 6월, 스위스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아트바젤 발루아즈 아트프라이즈 수상자로 강 작가가 지목됐다는 것. 수상자로 선정되면 3만 스위스 프랑을 받고 수상작은 아트바젤 측이 구입, 유럽 내 주요 박물관에 기증되는 영예도 따라온다. 강 작가의 아트바젤 출품작 다섯 개 중, <Grandmother Tower - tow> 등 주요 두 작품은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MUDAM)에 기증됐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아트컬렉터들에게 갔다.
현재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아트바젤이 열릴 당시 기말고사다, 학기 마감이다 해서 스위스엔 가지 못했다고. 그러니 수상 소식을 듣곤 어안이 벙벙했을 수밖에. 뽑힐지 모른다고 기대했다는 수상자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출품만 하고 행사장은 아예 가지도 않았으니 상상이나 했을까요? 어느 날 새벽에 자는데 전화가 자꾸 오더라니요… 제 프로필을 재차 묻고 확인하기에 왜 그러나 했어요. 이후 공식 발표되고 나서야 수상 소식을 알게 됐죠. 절 수상자로 지목하기 위해 프로필을 확인하는 절차였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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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mother Tower>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고한 조모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서경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전통이고 옛것이었다. 할머니의 영향이었을 테다. “전통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은 서로 평행선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둘을 잇는 척추를 만들고자 하는 거고 그 과정이 바로 지금까지의 작업이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볼 수 있고, 미래를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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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념은 그의 다른 연작물 <정(井)>과 연계된다. 자신의 작업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조가 된다고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아홉 칸의 그리드로도 보이는 ‘井’ 자. 강서경은 이 한 칸 한 칸을 작업의 조형 단위로 작동시켰다. 개인을 구성하는 움직임과 목소리를 담은 하나의 공간이자, 더 나아가 개인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균형의 방식을 찾아 나가는 시각적 구조로 말이다. 그에게 각 칸은 회화를 담는 틀이 될 수도, 회화가 빠진 틀은 회화를 만들어가는 서사, 신체, 시간의 개념을 담는 그리드가 될 수도 있다.
“회화, 작업 근간이자 방법론 찾아가는 과정”
언뜻 그의 작품에서 설치와 영상, 액티베이션(퍼포먼스)이 회화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화는 그의 작품의 근간이자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다. 캔버스를 물감으로 채우듯 강 작가는 공간을 오브제로 채우며 그만의 조형 어법을 바탕으로 회화를 조형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는 ‘진짜’ 페인팅도 작업하고 있으나 이를 뒤집어 쌓아놓는 형태로 설치하는 등 일반적인 회화 개념과는 달라 애초에 그의 작품에서 회화를 인지하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다. 페인팅 한 점은 강서경에게 그저 한 단어이자 또 다른 방법론을 찾아가는 과정을 뜻한다. 한 점 한 점을 모아 쌓음으로써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강서경은 동양화를 전공했다. 2000년대 초반, 그의 초창기 작업에서는 수묵화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흔적은 최근 회화에도 이어진다. 여전히 먹과 장지는 그의 주된 재료이며, 캔버스 위에 장지를 붙이고 물감은 먹과 섞어 페인팅한다. 수묵 특유의 창백함이 강서경의 회화에 나타나는 까닭이다. 또한 초창기 수묵화에서는 개인의 서사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보다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양상이다. “예전보다 거시적인 서사를 담아내고자 하는 거죠. 이를 어떻게 시공간 안에서 아름답게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랄까요. 물론 페인팅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매일 그리고 있어요. 일기 쓰는 것과도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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