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쩌면 무용의 미래를 먼저 보았다, 신창호 '맨메이드'

  • 뉴시스

입력 : 2018.05.13 22:51

'맨메이드'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무용단의 신작 '맨 메이드'는 시작부터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눈처럼 하얀 무대를 배경으로, 몇 분 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무용수···.

무용공연인데 움직임 없이도, 관객의 뇌와 마음을 분주하게 만든다. 과연 '이 공연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자문하게 된다.

이후 무용수들은 로봇 같이 절제된 반복 움직임을 선보인다. 24명의 무용수들이 가로 5줄, 세로 5줄로 도열(가운데는 점처럼 비어 있다)한다. 이들이 미세하게 변주하는 움직임과 리듬은 픽셀의 변화처럼 느껴진다.픽셀은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의 네모 모양.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스크린 구실을 하는 무대 뒤 벽에는 실제 픽셀 모양의 점이 다양한 크기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무용 안무가 신창호(42)가 안무한 '맨 메이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질문을 다양한 은유로 건넨다. 특히 가장 인간적인 움직임을 탐구하는 무용수들이 인공적인 픽셀처럼 움직이는 형상은 이미지의 균열을 안긴다. 한국 장단이 살짝 가미된 전자음악 비트의 충동질과 조명이 다양한 각도로 현란하게 협연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마치 잘 조작된 그래픽을 보는 듯하다.

신 안무가는 무용으로 코딩을 해냈다. 코딩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리킨다. 세밀한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창출해내는 신 안무가의 특징이 절제됐다. 그의 호흡이 한국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만나 기하학적으로 생성되고 명멸한다. 신 안무가의 관절도 딱딱한 기본 동작은 유연하고 여운을 주는 몸짓으로 승화한다.

10~12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맨메이드'는 현대무용 기반의 신 안무가와 한국무용 기반의 국립무용단이 만나 개막 전부터 주목 받았다. 이 조합은 무용 장르 간의 확장은 물론 사유의 폭을 넓혀준 공연으로 기억될 듯하다.

2장에서 조안무를 맡은 김병조(38)와 젊은 단원 박소영(26)이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무용에 대해 사유를 던지는 부분, 역시 독특한 리듬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무릎을 비슷하게 구부리는 동작을 발레에서는 플리에, 한국무용에서는 굴신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고찰을 비롯해 무용수들이 일상에서 나눌 법한 대화를 무대 위에서 직접 듣는 순간은 묘한 쾌감을 준다.

하이라이트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쓴 이요음(28)이 등장하는 마지막 부분. 작은 공간에서 춤을 추는 그녀의 앞에서 박혜지(29)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재현해낸다. 박혜지는 이요음이 보는 가상현실 속 캐릭터일 텐데, 객석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은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다.

과연 내가 보는 춤이 물리적으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이후 무용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픽셀처럼 두 사람을 둘러싸고, 반복적이지만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인간적인 몸짓이 인공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분명 인간이다. 그래서 '맨 메이드', 이렇게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서로 보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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