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때 詩로 만난 인도, 75년 동안 푹 빠졌죠"

  • 김승현 기자

입력 : 2018.04.10 23:43

한국·인도 문화 교류 앞장서 온 시인 김양식 인도박물관장
인도 국립문학원 명예회원 선정
내년 김해시로 박물관 이전 예정… 소장품 2500점 市에 기증하기로

"이 조각상은 1970년대에 컨테이너 박스에 싣고 왔습니다. 흙먼지가 어찌나 많던지 솔로 닦느라 애먹었죠. 참 예쁘죠?"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인도박물관에서 만난 김양식(87) 인도박물관장이 2m 넘는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하나) 조각상을 만지며 말했다.

그는 2011년 국내 최초로 인도박물관을 열었고, 30년 넘게 한인(韓印)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인도 문화 전도사'다. 한국·인도 간 문화 교류에 앞장선 공로로 2002년 인도 문화훈장 '파드마 슈리(PADMA SHRI)'를 받았다. 지난달엔 인도 국립문학원의 '명예 회원(Honorary Fellowship)'이 됐다. 해외 작가 중 인도 문학 발전에 힘쓴 이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영구 회원증이다. 타고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시집 '기탄잘리'를 비롯해 인도 시집·희곡집 등을 한글로 번역해 소개한 공로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양식 인도박물관장이 서울 서초구 인도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 관장은“열두 살 때 타고르를 통해 맺은 인도와의 인연이 70년 넘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10년 전 위암 수술 후 인도에 못 갔어요. 몸무게가 3㎏ 늘 정도로 건강이 좋아져 용기를 냈죠. 문학원장을 비롯해 200여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인도와 저의 인연을 발표했는데 어찌나 떨리던지요."

첫 인연을 맺은 건 12세 때였다. "오빠가 타고르 동시집 '초승달' 한글본을 줬습니다. 한글 공부하라고 줬는데 푹 빠졌죠." 시성(詩聖) 타고르는 신비롭고 서정적인 사상을 소박한 시어로 담아내 1913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꽃 학교나 요정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동시를 읽으며 꿈을 키웠습니다."

김 관장은 이화여대 영문학과 졸업 후 1969년 월간문학에 시 '풀꽃이 되어 풀잎이 되어'로 등단했다. 시집 '정읍후사'(1971), '초이시집'(1974) 등을 낸 그는 1975년 인도와 다시 만났다. 첸나이에서 열린 아시아시인대회에 초청돼 인도 땅을 밟았다. "툭 자른 파초잎 그릇에 밥과 야채볶음 한 주걱씩 얹어주는 소박함, 손바닥만 한 범어(고대 인도의 표준어) 불교 경전을 갖고 다니며 들춰보는 성숙함에 놀랐습니다. 성장·개발에 몰두하던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죠."

동국대에서 인도철학 석사 학위를 땄다. 1981년 한국타고르협회(現 한인문화연구원)를 세우고 인도에 관심 있는 교수들과 인도 음악·무용·문학 강연회를 매달 열었다. "100명은 거뜬히 모였어요. 미지의 나라를 알려는 열기가 컸죠." 1983년에는 한국타고르협회장 자격으로 인도를 찾았다.

인도에서 타고르 시 낭송 행사나 문학인 모임이 열리면 자주 초청됐다. 1년에 한두 번씩 인도를 방문해 조각상과 민화, 악기 등을 사 모았다. "예술품을 모아둔 창고나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귀한 물건들이 방치돼 아까웠죠. 조각상은 컨테이너 박스로 옮겼고 장신구는 싸 들고 왔죠." 2500여 점을 모아 박물관을 열었다.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인도 대사들조차 처음 보는 게 많다고 했습니다. 제게 '당신이 진짜 인도 대사'라고 했어요."

김 관장은 "걱정거리를 덜어 마음 편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와 협약을 맺고 인도박물관을 이전하기로 했다. "인도 공주 허왕후가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왔다는 김해는 인도와 인연 깊은 곳입니다. 지자체에 맡기면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거고요."

시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을 세워주는 대신 소장품 전체를 시에 기증한다. 내년 하반기 개관이 목표다. "40년 전 인도에서 느낀 소박함 속 풍요로움을 많은 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