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09 01:14
루마니아 출신 무서운 신예… 국립오페라단 '마농' 파사로이우
"오, 하느님! 이 최후의 순간에 나를 붙드소서…."
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생 쉴피스 성당을 배경으로 한 3막2장에서 마농은 작심한 듯 용서를 빌었다. 믿었던 사랑에 뒤통수 맞고 사제가 된 연인 데그리외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마농의 마력에서 헤어날 길 없는 사내는 무력하게 무너지며 또다시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집요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소프라노와 이를 물리치려는 테너의 이중창이 결국 여인의 사악한 미소로 끝나는 순간 공연장은 박수로 차올랐다.
쥘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이 29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올랐다.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 16세 소녀 마농이 귀족인 데그리외를 만나서 1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일련의 사건을 겪다 파멸하는 이야기다.
스페인 테너 이즈마엘 요르디는 투명한 미성으로 데그리외를 그려냈다.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는 감미로웠다. 가장 탁월한 선택은 루마니아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31)였다. "살아 있는 마농 같다"고 호평한 연출가 뱅상 부사르의 말처럼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공연 이틀 전 분장실에서 만난 파사로이우는 "진정한 사랑이냐, 풍부한 돈이냐. 나는 그 안에서 360도 다양한 각도로 각 단어에 고유한 색채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10년 차인 파사로이우는 지난해에만 빈 국립극장, 뮌헨 바이에른 국립극장, 브레겐츠 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를 석권한 신예다.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빈 국립음대를 나왔고, 2009년 볼로냐 시립극장에서 오페라 '라 론디네'의 마그다 역으로 처음 무대에 섰다.
유년 시절엔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내향적이어서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할아버지 책장에서 오래된 책을 찾아 모조리 읽었죠."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를 독학으로 통달했고, 음악과 상관없는 책도 많이 읽는다. "노래를 제대로 부르려면 심리학에 눈을 떠야 한다"고도 했다. "무대에서 다른 누군가로 살아야 하니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꾸 날 꾸미면 마농처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죠."
지난해 '마농'을 연습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일이 있다. 특수 제작한 신발을 신고 네 시간 내내 노래하고 춤췄다. 진통제를 많이 삼켜 숨이 찼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정말로 원한다면 모든 게 가능해요. 눈물을 닦아내고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