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돈이 전부인 시대… 콘서트홀서 인문주의 꽃 피우겠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8.03.26 23:47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내한, 오늘부터 롯데콘서트홀서 연주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클래식의 어벤져스' 기대하세요"

'최상의 기교, 완벽한 연주, 탁월한 음악성'.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1)를 수식하는 말은 언제나 이렇다. 열여덟 살이던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음악계에 뛰어든 그는 3년 뒤 뉴욕에서 열린 나움버그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스물한 살 나이에 비르투오소(대가)로 평가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삶은 리듬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 안 듣던 클래식이 좋아지고, 클래식을 즐기다 보면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쓰는 악기는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빌르모트(Willemotte). /유니버설뮤직
"이츠하크 펄먼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를 받는 카바코스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COE)를 이끌고 서울에 왔다. COE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손길이 닿은 명(名)실내악단. 27~28일 이틀간 롯데콘서트홀에서 바흐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슈베르트와 베토벤, 슈만의 교향곡 등을 들려준다.

23일, 5시간에 걸친 리허설 후 만난 카바코스는 차가운 생수를 한입에 들이켜며 쾌활한 웃음을 날렸다. 찰랑이는 갈색 머리에 히피의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클래식 작곡계의 어벤져스'라 할 만해요. 바흐부터 슈만까지, 브람스만 빼고 다 모았으니까." 그는 "성공과 돈이 전부인 시대에 밀려나 버린 인문주의를 콘서트홀에서 꽃피우고 싶다"며 "공연장은 바깥세상의 소음을 제거한 성소(聖所). 유머러스한 모차르트, 냉소 번득이는 베토벤을 들으면 정신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포크 음악을 연주한 할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따라 다섯 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199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받고, 지금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와 빈 무지크페라인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고 무대를 섭렵했지만 그는 "전사(戰士)처럼 살았다. 클래식의 모든 걸 소화하기 위해 배 터지게 먹어치우고 잘근잘근 씹어 토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내 이름 '레오니다스'는 영화 '300'에도 나오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를 딴 거예요.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전사했지요. 내게 악보는 전쟁터예요. 완벽 그 자체인 베토벤도 초고부터 완고까지 갈등하고 싸우며 고친 흔적이 가득하죠. 내가 바이올린에서 세 번 도망쳤다면 믿겠어요?"

바쁜 시간을 쪼개 해마다 사흘씩 하루 일곱 시간 동안 마스터 클래스를 연다. 다시 태어나면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갔다가 35년 전 올림푸스 산에서 발굴한 여인의 대리석상을 봤어요. 진흙에 파묻혀 20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아름다운 얼굴이 햇살을 받으며 평온하게 숨쉬고 있었지요." 카바코스는 "나도 고고학자처럼 300년 된 악보에서 빛나는 순간을 찾아내고 싶다"며 "자서전을 쓴다면 제목은 'My Mistakes(내 실수)'로 달고 싶다. 하지만 결코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번 연주하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음악처럼 나 또한 연주를 멈추고 나면 별 볼 일 없는 인간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이 순간 빛나기 위해 전부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게 고행에 가까울지라도." 카바코스는 연습이 덜 끝났다며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