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 악기 대신 돌멩이가 들려주는 연주 들어보실래요?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8.03.23 00:48

서울시향, 오늘 예술의전당 무대서 외트뵈시의 '암석' 돌멩이로 연주

"자, 그럼 돌멩이를 집어드세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겸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74)가 지휘봉 대신 주먹만 한 돌멩이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클래식 공연에 돌멩이라니! 그런데 리허설 시작을 기다리던 서울시향 단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으로 나갔다. 그러곤 바닥에 놓인 돌멩이 수십 개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두 개씩 골라 자리로 돌아갔다. 외트뵈시가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22일‘암석’리허설이 한창인 서울시향 연습실.
22일‘암석’리허설이 한창인 서울시향 연습실. 이번 공연 지휘를 맡은 페테르 외트뵈시와 비브라폰 주자 등 단원들이 양손에 돌멩이를 쥐고 딱딱 소리를 내며 연주 삼매경에 빠져 있다. /오종찬 기자
23일 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이 돌 부딪는 소리로 물든다. 서울시향 현대음악 프로그램인 '아르스 노바(새로운 예술)'가 외트뵈시의 1985년 작 '암석(Steine)' 연주로 이날 무대를 열기 때문이다. 23일·30일 이틀간 지휘를 맡은 외트뵈시와 시향 단원 23명은 17분 길이 '암석'에서 수시로 돌멩이를 맞대고 두들기며 딱딱 소리를 낸다. 물론 각자의 악기도 연주한다.

'암석'은 외트뵈시가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60세 생일을 기념해 선물로 쓴 곡이다. 외트뵈시에게 불레즈는 "처음엔 멘토였지만 나중엔 동료"가 된 고마운 사람.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외트뵈시는 1978년 불레즈의 초청으로 지휘에 몸담았고,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단체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IC)에서 10년 넘게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활약했다. 1991년 EIC에서 물러난 뒤부터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해 작곡계에서도 알아주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0월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에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초연해 호평받은 2017년 작 '오르간, 해먼드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중 우주론' 역시 불레즈에게 헌정했다.

음악적으로 '암석'은 리듬과 음정이 예측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듣고 있으면 신비롭다. 지휘자·작곡가·교육자로서 탁월한 발자취를 남긴 불레즈를 그린 초상화인 셈. 외트뵈시는 "불레즈의 이름 피에르가 '돌'이란 뜻이고, 내 이름 페테르도 '돌'이란 뜻이어서 두 개의 돌을 맞부딪는 것"이라며 웃었다.

현대음악의 경우 피아니스트가 연주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뚜껑 아래 속을 뜯거나 타악기 주자가 신문을 보는 등 색다르고 기이한 표현이 많다. 시향으로서도 돌멩이가 악기인 경우는 처음이다. 리허설 직전 외트뵈시는 단원 모두가 돌멩이를 '연주'해야 한다며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 조약돌처럼 반들반들한 표면이면 좋겠다"고 했다.

시향 직원들은 사무실 주변과 근처 꽃집을 돌며 돌을 모았고, 세척제로 깨끗이 씻어 햇빛에 말렸다. 지휘자용 돌멩이는 외트뵈시가 직접 가져와 천주머니에 소중히 보관한다. 외트뵈시는 30일 밤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아르스 노바 II'에서 본인 지휘로 '다중 우주론' 등 관현악 작품들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