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 프라이어 "분단된 한국도 새로운 시작 필요'"

  • 뉴시스

입력 : 2018.03.08 09:28

기자회견 참석한 아힘 프라이어 총연출
"우리 세계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다. 분단됐던 독일, 여전히 분단된 한국도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죠."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84)가 한국의 공연제작사 월드아트오페라와 손잡고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선보인다.

프라이어는 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해요. 이번에 서로 손을 내밀어서 '니벨룽의 반지'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너의 대서사시 '니벨룽의 반지'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걸작으로 통한다. 바그너가 26년 만에 완성한 노작(勞作)으로 푸치니를 비롯한 이후 작곡가 세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저주 받은 반지가 저주에서 풀려나기까지의 여정과 그 반지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곡은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전체 4부작에 연주시간만 장장 16시간에 달하는 대서사극이다.

프라이어와 월드아트오페라가 한국과 독일 수교 135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이번 프로덕션은 11월 14~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인의 황금'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발퀴레', 같은 해 12월 '지그프리트', 2020년 '신들의 황혼'까지 3년 동안 4편을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한편당 30억원씩 총 12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독일 서사극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마지막 제자로 유명한 프라이어는 오페라 연출가일뿐만 아니라 화가, 무대미술가, 영화감독 등의 직함도 갖고 있다. 과거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의 오페라 창극 '수궁가'(2011)를 연출했으며 진은숙 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연출한 그는 지한파로 통한다. 한국인인 월드아트오페라의 에스더 리 단장이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런 그는 '니벨룽의 반지'에 남북의 분단상황과 핵전쟁의 위협 등 현 한반도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겠다고 예고했다. '니벨룽의 반지' 연출이 미국 로스앤젤레스(2010)와 독일 만하임(2013)에 이어 세 번째인데, 이전과 자연스레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프라이어는 "한국에서 만든 '니벨룽의 반지는 한국을 위해 만들어요. 물론 음악과 텍스트는 동일하겠지만 의상과 무대, 해석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한국에서 한국 분들하고 같이 만드니까, 같을 수가 없죠. 아울러 제가 '니벨룽의 반지'를 처음 만든 것이 10년 전이니까 그 사이 정치, 패션, 사고도 많이 변했죠. 모든 것이 다 달라졌어요. 그러니 작품에 대항 해석도 달라지겠죠."

무엇보다 프라이어는 독일을 위해서 한국의 판소리로 창극을 만든 것처럼 한국을 위해서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선물하고 그 새로운 선물을 받는 것만큼 더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미소지었다.

"정치적인 사건을 무대 위에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저희와 극장의 과제죠. 분단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전 세계 인류의 문제는 분단돼서 생기는 거죠.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겁니다. 답변을 모두 듣지는 못할 거예요. 다만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 파티는 성공한 겁니다. 이 작품으로 관객들이 많은 대화를 하면, 성공을 한 것이라고 봐요."

바그너가 150년 전에 만든 작품이지만 현재 우리 삶을 예견하는 것이 많다고도 여겼다. '니벨룽의 반지'가 이 시대에 가장 지적인 작품이라고 정의한 프라이어는 "환경 파괴 등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이 많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인간이 가진 걸 빼앗아가는 역설적인 환경을 바그너는 예견하고 시사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를 만들 당시 권력에 대한 욕심과 폭력이 난무하고 사랑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던 때였다. 작품의 내용을 빌리자면, 누구도 돌보지 않는 신들과 복수에 눈 먼 난쟁이들 그 사이에 지그프리드라는 인간이 있데 삶에서 실패하고 유혹에 무너지면서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프라이어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으며 또 환경을 파괴하는 원흉들이 아닌가"라면서 "사랑을 말살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작품이에요. 우리를 인식하고 꿈을 이루며 새로운 시작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주한독일문화원과 BMW 코리아과 협력과 후원을 맡은 이번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은 또한 세계적 명성의 독일 본 극장(Theater Bonn)과 공동제작을 진행해 눈길을 끈다.

본 극장이 현재 무대를 제작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한국 제작사가 이를 공수해 사용한다. 2020년 5월 한국 공연 종료 후에는 본 극장이 이 무대를 다시 가져가 '니벨룽의 반지' 사이클을 진행한다.

공연 자체가 힘든 '니벨룽의 반지'는 지난 2005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했다. 한국에서 기획과 제작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월드아트오페라의 에스더 리 단장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제작한 경험은 제 인생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인적인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 때 플라시도 도밍고가 총감독을 맡았고 아힘 프라이어 연출이 연출, 무대미술, 의상, 조명을 맡았는데 그 때 모국인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7년 간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진행했다"고 돌아봤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보고 새로운 극장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면서 정치·사회적이면서 환상적인 작품을 보여주려는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의 모든 공연은 4K 기술로 영상 촬영에 세계 극장에 배급한다는 계획이다. 뉴욕필 평양공연(CNN), 빈필 신년음악회 등의 촬영감독을 맡았던 미하엘 바이어가 힘을 보탠다. '라인의 황금' 지휘는 취히리오페라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랄프 바이거트가 맡는다.

출연하는 성악가들 역시 쟁쟁하다. '바그너의 성지'로 통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비롯해 잘추부르크 페스티벌 등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총출동한다. 안드레아스 샤거, 아놀드 베츠엔, 연광철, 전승현, 사무엘 윤, 김동섭 등이 섭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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