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박사'가 부르는 슈베르트, 들어보실래요?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8.03.06 00:18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선정
일곱 번 공연하는 보스트리지

여기, 독특한 이력을 가진 남자가 있다.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4).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에서 유럽문화사를 가르치던 중 스물아홉이던 1993년 런던의 실내악 성지(聖地) 위그모어홀에 데뷔하며 성악가로 전업했다.

이언 보스트리지는“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음악으로 묶어‘우정’을 나눌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이언 보스트리지는“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음악으로 묶어‘우정’을 나눌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3년 만에 첫 음반인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하이페리온)로 그라모폰 솔로 보컬상을 받았고, 지난해 '셰익스피어의 노래'(워너클래식)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청아하면서도 지적인 목소리의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정평이 났다. '노래하는 인문학자' '박사 테너'란 수식이 붙은 이유다.

그가 올해에만 세 차례(3·7·11월) 우리나라에 온다. 서울시향이 정상급 음악가를 초청해 조명하는 '올해의 음악가' 프로젝트에 첫 주자로 뽑혔다. 5일 아침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보스트리지는 깡마른 몸에 카키색 재킷을 걸치고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처럼 걸어 들어왔다.

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서울시향과 첫 무대를 연다.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일부와 '강 위에서', 베토벤 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를 선보이고, 작곡가 콜린 매슈가 실내악으로 편곡한 말러의 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을 들려준다. 보스트리지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잇는 끈을 보여줄 프로그램"이라며 "슈베르트가 세상 물정을 알기 시작했을 때 베토벤은 이미 음악계에서 촉망받는 작곡가였다. 그가 베토벤에게서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또 그 그림자 안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년 동안 100차례 넘게 슈베르트 가곡 '겨울 나그네'를 부른 경험을 살려 2015년 이 곡에 숨겨진 의미들을 짚어낸 저서 '겨울 나그네'를 펴냈다. 책은 10여개 언어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잦다. 그는 "현안에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는 가디언과 텔레그래프를 번갈아 읽으며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다"고 했다.

부모는 노동자 계급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려줬고, 교회에서 성가를 배우게 했다. 노래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1990년 방송사 리포터로 일하던 중 유명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를 찾아간 것이 계기였다. 피셔디스카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징집됐다가 연합군 포로가 돼 이탈리아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고, 1948년 한 음악회에서 '겨울 나그네'를 부르며 성악가가 된 인물이다. 보스트리지는 그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음악은 지역과 인종, 세대를 넘어 모두의 가슴에 파고들어요. 1년 동안 서울에서 그걸 알리고 싶습니다." 158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