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로 고국의 아리랑 연주했어요"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8.02.05 23:32

스타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 두 살 때 오빠와 네덜란드 입양

네덜란드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35)가 태어난 곳은 한국이다. 세 살 위 친오빠와 함께 네덜란드 가정에 입양된 건 두 살 때인 1985년. 사회복지사인 양아버지와 회계사인 양어머니는 첫 딸을 낳고도 한국에서 이들 남매를 입양한 뒤 그녀보다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을 에티오피아에서 또 입양했다.

"네덜란드인 아버지, 오스트리아에서 온 어머니, 유럽계 친딸, 아시아계 남매, 아프리카 출신 남동생…. 우리 가족을 보면 '세계 평화'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놀림도 받았지만, 생김새 다른 게 음악 경력 쌓는 덴 오히려 도움이 됐죠. 저를 한번 본 사람들은 절대 잊지 않으니까요."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라비니아 마이어는 하프를 연주하듯 두 팔을 들어 올리며“하프 연주는‘온몸의 노동’”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라비니아 마이어는 하프를 연주하듯 두 팔을 들어 올리며“하프 연주는‘온몸의 노동’”이라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18 평창겨울음악제에 합류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마이어는 자신이 작곡한 '아리랑 변주곡' 등을 연주했다. 소니뮤직에서 갓 출시한 디지털 앨범 '아리랑(Arirang)'도 선보였다. 이번이 일곱 번째 방한. "신기하죠? 인천공항에 발 디디면 누군가 절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요."

마이어가 하프를 처음 본 건 여덟 살 때다. 물결치듯 휘돌아 나가는 악기 틀에 투명한 현(絃) 47개가 신비로워 보였다. 열네 살 때인 1997년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 브뤼셀에서 열린 하프 콩쿠르에서 또 우승한 그는 2007년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열며 스타 하피스트가 됐다.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는 "수시로 '난 누구일까' 자문하곤 했다"고 했다. "처음엔 몰랐어요.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한국을 향한 관심은 조금도 없었죠. 그런데 2008년 친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절 만나고 싶다고 했죠. 월요일 오후였어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가슴 속에 숨겨왔던 수많은 감정이 터져 나왔다. 마이어는 생부(生父)를 만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듬해 1월 처음 한국에 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데, 문득 객석에서 생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만난 생부는 그녀와 꼭 닮은 보조개를 갖고 있었다.

마이어는 클래식뿐 아니라 전자음악 같은 현대음악을 선사하는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손잡고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추모 음악회를 열고, '아리랑 변주곡'을 작곡해 유럽 내에서만 50회 가까이 연주했다. 하프와 달리 농현(弄絃·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내는 꾸밈음)이 있는 가야금에 빠져 실제로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가족 중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함께 입양 간 친오빠가 한때 백파이프를 즐겨 불었던 게 전부. "근데 친할아버지가 노래를 엄청 잘 부르셨다네요.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이 제 안에서 툭 튀어나온 게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