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01 02:12
가수 김수철이 추억하는 황병기

황병기 선생을 처음 만난 건 80년대 중반이다. 양악(洋樂)을 했던 나와 후배 몇 명이 선생님과 식사하는 자리였다. 내가 국악 공부를 시작한 지 4~5년 정도 됐을 때다. 첫인상이 딱 선비였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는 했지만, "국악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충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쭉 그랬다. 당신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잔소리하는 법이 없었다. 전통 음악의 보존을 중시하는 국악계에서 창작, 그것도 실험적인 작곡을 했던 황 선생을 곱게 보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국악 하는 젊은이들에게 선생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자 용기가 됐다.
황 선생은 대학 강단에서 두 시간짜리 긴 강의로도 학생들을 웃긴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이었다. 농담 한마디를 해도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눈만 껌벅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배꼽을 쥐고 깔깔 웃었다. 무심한 달변가라고 할까. 허투루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그의 해박한 지식은 언제나 젊은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국악보다는 시, 소설, 그림, 재즈, 클래식 등 다른 분야 예술을 많이 이야기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을 특히 좋아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부인인 소설가 한말숙 선생을 함께 뵐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두 분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부부 같았다. 황 선생은 시대를 앞서간 분이다. 금기(禁忌)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영원한 청년이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인자했고, 사랑을 듬뿍 주셨다. 우리를 웃음 짓게 했던 당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