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 별세…향년 82

  • 뉴시스

입력 : 2018.01.31 09:33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82)가 31일 새벽 별세했다. 지난해 말 뇌졸중 치료를 받은 이후 폐렴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창작음악의 1세대로 통하는 황병기는 올해 가야금 인생 67주년, 창작 인생 56주년을 맞은 우리 가야금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황병기는 법대 3학년 재학 중 KBS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하며 국악 재능을 알렸다. 1950년대 당시에는 국악과가 없었기 때문에 법을 공부했다. 서울대 음대가 생긴 건 1959년이었다.

1962년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국화 옆에서'를 통해 가야금 연주자로 첫 발을 내디뎠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가야금 현대곡으로 통하는 '숲'을 만들었다. 1965년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20세기 음악예술제'에 아시아의 대표적 작곡가로 초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황병기는 1960년대 극장 지배인, 출판사, 화학공장 기획관리 등의 일을 했다.

1970년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에 국악과가 생기면서 국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했다. 1974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며 음악을 전업으로 삼았다. 이후 2001년 정년퇴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아르코(ARKO) 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1974년 유럽 공연을 앞두고 신라 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등 전통을 품는 동시에 독창적인 곡들을 선보여왔다.

특히 1975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미궁' 등이 대표작이다. '미궁'은 첼로 활과 술대(거문고 연주막대) 등으로 가야금을 두드리듯 연주하고 무용인 홍신자의 절규하는 목소리를 덧입은 파격 형식의 곡이었다. 2000년대 들어 미궁 관련 괴소문이 퍼지면서 젊은 층에서 관심을 갖기도 했다.

2014년 '정남희제(制) 황병기류(流) 가야금 산조' 음반을 내고, 지난해 9월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가곡(歌曲) 콘서트 '황병기 가곡의 밤', 같은 달 롯데콘서트홀에서 '국악시리즈 II ? 국립국악관현악단'을 펼치는 등 말년까지 활발한 연주 활동을 보였다.

대한민국국악상, 방일영국악상, 호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대상, 만해문예대상 등을 받았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유족으로 소설가 한말숙 씨와 아들 황준묵, 황원묵 씨, 딸 황혜경, 황수경 씨 등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30호실.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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