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17 23:56
연극 '백석우화' 공연 마지막 날 객석 모자라 보조 좌석까지 등장
"선생님, 사진 같이 찍어주세요!"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창경궁을 등진 서울 명륜동 주택가 깊숙한 곳 소극장 '30스튜디오' 앞. 연극 '백석우화' 마지막 공연이 열린 15일 저녁 제대로 된 푯말도 없는데 관객들은 후미진 극장을 잘도 찾아왔다. 연출가 이윤택(66)도 팔 붙잡는 관객들이 싫지 않은 눈치다. "공연은 원래 14일까지였어요. 근데 못 본 사람, 또 보겠다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딴 연극 다 쉬는 월요일에 '막공'(마지막 공연) 한 번 더 하는 거지요." 표정에 잘난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부모 같은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작은 극장 안은 후끈했다. 객석 65개는 공연 10분 전쯤 꽉 찼다. 계단참마다 방석을 더 놓고도 모자라, 무대 바로 앞에 한 줄 더 자리를 냈다. 남에서 금지되고 북에선 붓 꺾였던 시인 백석,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펄펄 살아 뛰었다. 2015년 초연 이후 연희단거리패 대표 레퍼토리가 된 '백석우화'의 힘이다.
이 무대에서 문학은 극(劇)을 만나 매일 밤 새로이 삶을 입었다. 여성 문인 노천명, 모윤숙, 최정희가 누가 진짜 백석의 나타샤인가를 놓고 언쟁할 땐 무대와 관객이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세기 초 조선 최고의 연애시로 불렸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노래로 들어도 절창이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흰 당나귀 울음소리가 귀에 들릴 것 같다.
백석(오동식)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산문 '이솝의 우화'를 읊는 클라이맥스의 힘이 가장 선명하다. 백석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바른 피에로가 된다. 가장 악한 것을 구해오라는 주인에게 짐승의 혀를 여럿 갖다주며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이 생겨나는 곳은 이 작은 혀끝"이라 울부짖는다. 내리꽂히는 조명을 받으며 백석이 피 토하듯 말하면, 그 고통이 통째 느껴진다. 사상통제와 강요로 입이 막히고 손이 묶인 채 시인이 견뎌야 했던 세월이 그 무게 그대로 객석을 덮친다.
1년 반 전 이 소극장을 열며 이윤택은 "연극의 제의적 힘을 회복하겠다"고 했었다. '백석우화'는 그가 약속을 꿋꿋이 지켜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백석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노래했다. 유흥가가 돼버린 대학로에서 훌쩍 떨어진 골목 안, 연희단거리패는 백석의 시 속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서 있었다.
작은 극장 안은 후끈했다. 객석 65개는 공연 10분 전쯤 꽉 찼다. 계단참마다 방석을 더 놓고도 모자라, 무대 바로 앞에 한 줄 더 자리를 냈다. 남에서 금지되고 북에선 붓 꺾였던 시인 백석,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펄펄 살아 뛰었다. 2015년 초연 이후 연희단거리패 대표 레퍼토리가 된 '백석우화'의 힘이다.
이 무대에서 문학은 극(劇)을 만나 매일 밤 새로이 삶을 입었다. 여성 문인 노천명, 모윤숙, 최정희가 누가 진짜 백석의 나타샤인가를 놓고 언쟁할 땐 무대와 관객이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세기 초 조선 최고의 연애시로 불렸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노래로 들어도 절창이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흰 당나귀 울음소리가 귀에 들릴 것 같다.
백석(오동식)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산문 '이솝의 우화'를 읊는 클라이맥스의 힘이 가장 선명하다. 백석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바른 피에로가 된다. 가장 악한 것을 구해오라는 주인에게 짐승의 혀를 여럿 갖다주며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이 생겨나는 곳은 이 작은 혀끝"이라 울부짖는다. 내리꽂히는 조명을 받으며 백석이 피 토하듯 말하면, 그 고통이 통째 느껴진다. 사상통제와 강요로 입이 막히고 손이 묶인 채 시인이 견뎌야 했던 세월이 그 무게 그대로 객석을 덮친다.
1년 반 전 이 소극장을 열며 이윤택은 "연극의 제의적 힘을 회복하겠다"고 했었다. '백석우화'는 그가 약속을 꿋꿋이 지켜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백석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노래했다. 유흥가가 돼버린 대학로에서 훌쩍 떨어진 골목 안, 연희단거리패는 백석의 시 속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