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2 10:25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무대미술가인 극단 자유의 이병복(91)이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무대미술계의 대모'로 통하는 이병복은 40여 년간 극단 자유를 이끈 연극인이자 척박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무대미술이란 장르를 개척한 무대미술가로 통한다.
스스로를 무대 뒤의 '뒷광대'라 표현하는 이병복은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당시 연극반 활동을 통해 처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 극단 여인소극장을 세웠다. 이후 6·25 동란이 발발했고, 피난한 부산에서 남편인 화백 권옥연(1923∼2011)을 만나 1953년 결혼했다. 1957년 권 화백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다 귀국한 뒤 충무로에 의상실 네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1966년 연출가 김정옥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1969년 4월 '세계 연극인의 날'에 맞춰 명동에 '까페 떼아뜨르'를 개관, '대머리 여가수'를 기념공연으로 올렸다.
'무엇이 될고하니' '달맞이꽃'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 '피의 결혼' '왕자 호동' '햄릿'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무대장치, 인형, 가면, 의상, 소도구를 만들었다.
한지를 사용한 종이의상을 개발했고 소도구를 무대미술의 개념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가장 한국적인,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미술가로 불린다. 1987년에는 한국무대미술가협회 발족과 함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프라하 세계 무대미술 경연대회(PQ)에서 1991년과 1999년 명예상과 은상을 받았다. 화관문화훈장,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동랑연극상, 이해랑연극상 특별상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는 고인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장례를 엄수한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내년 1월1일 (시간 미정)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유족으로 아들 권유진(첼리스트), 딸 권이나(재불화가)가 있다. 빈소 고대 안암병원. 02-927-4404
'무대미술계의 대모'로 통하는 이병복은 40여 년간 극단 자유를 이끈 연극인이자 척박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무대미술이란 장르를 개척한 무대미술가로 통한다.
스스로를 무대 뒤의 '뒷광대'라 표현하는 이병복은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당시 연극반 활동을 통해 처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 극단 여인소극장을 세웠다. 이후 6·25 동란이 발발했고, 피난한 부산에서 남편인 화백 권옥연(1923∼2011)을 만나 1953년 결혼했다. 1957년 권 화백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다 귀국한 뒤 충무로에 의상실 네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1966년 연출가 김정옥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1969년 4월 '세계 연극인의 날'에 맞춰 명동에 '까페 떼아뜨르'를 개관, '대머리 여가수'를 기념공연으로 올렸다.
'무엇이 될고하니' '달맞이꽃'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 '피의 결혼' '왕자 호동' '햄릿'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무대장치, 인형, 가면, 의상, 소도구를 만들었다.
한지를 사용한 종이의상을 개발했고 소도구를 무대미술의 개념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가장 한국적인,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미술가로 불린다. 1987년에는 한국무대미술가협회 발족과 함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프라하 세계 무대미술 경연대회(PQ)에서 1991년과 1999년 명예상과 은상을 받았다. 화관문화훈장,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동랑연극상, 이해랑연극상 특별상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는 고인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장례를 엄수한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내년 1월1일 (시간 미정)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유족으로 아들 권유진(첼리스트), 딸 권이나(재불화가)가 있다. 빈소 고대 안암병원. 02-927-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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