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30 01:46
"검찰이 17년 보관해 작품 훼손" 박상기 법무, 위탁·보관 검토 지시
해당 그림 그린 신학철 화백은 블랙리스트 조사委 공동위원장
반환 안되자 정부가 배려 해석도

대법원이 '이적 표현물'로 판단해 몰수 처리돼 국가가 보관해온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사진〉를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 관리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기로 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9일 "검찰이 모내기 그림을 약 17년간 보관했지만, 보관 장소와 방법이 적절치 못해 작품이 일부 훼손됐다"며 "모내기 그림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날 사면 발표 뒤 이 내용을 따로 설명했다. 장관이 특정 그림을 두고 이런 지시까지 하는 건 드문 일이다.
이 그림은 신 화백이 1987년 8월 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한 제1회 통일전에 출품한 것이다. 그림 상단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잔치하는 사람들이, 하단에는 농민들이 미국 등 외세를 상징하는 코카콜라, 양담배, 성조기 등을 써레질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검찰은 1989년 이 그림이 이적 표현물이라며 압류한 뒤 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신 화백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1998년 3월 "제작 동기, 표현 행위 등을 종합하면 북한 공산 집단의 활동에 동조하는 이적 표현물"이라며 원심을 깼다. 이후 1999년 8월 파기환송심은 신 화백에게 징역 10개월의 선고 유예와 그림 몰수를 선고했고, 석 달 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검찰은 몰수한 미술품이나 차량 등의 물품을 공매(公賣)해 그 수익을 국고로 환수한다. 다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수한 물품들은 공매하지 않고 확정판결 후 폐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검찰은 모내기 그림이 사회적 이목을 끈 사건의 증거물이라고 보고 2001년 3월 이례적으로 영구 보존 결정을 내렸다.
신 화백은 2000년 특별사면을 받은 뒤 "몰수된 그림도 돌려 달라"고 요구해왔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2004년에 그림 반환을 권고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몰수됐기 때문에 법원이 재심 재판을 열어 기존 판결을 무효로 하지 않는 한 돌려줄 수 없다"고 거부해왔다. 검찰은 이 그림을 보존 결정 이후부터 서울중앙지검 공안과 몰수품 창고에 보관해왔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박 장관이 그림을 미술관으로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다.
신 화백은 지난 7월 말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신 화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