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영웅·명성황후·레미제라블… 무대 위에 영혼을 불어넣다

  • 최보윤 기자
  • 편집=섹션편집팀

입력 : 2017.12.29 04:00

뮤지컬 음악 '섭외 1순위'… 음악감독 김문정

난 무대를 비추는 ‘거울’
배우·연주자 사이에서 서로의 감정 전달하죠

흥행 뮤지컬 뒤엔 늘 그녀가 있다. 음악감독 김문정(46). 뮤지컬 '영웅' '레베카' '레미제라블' '데쓰노트' '맘마미아!' '엘리자벳' '서편제''오케피' '내 마음의 풍금' 등을 비롯해 현재 공연 중인 '모래시계' '더 라스트 키스'…. "맡은 작품 숫자가 50개가 넘은 뒤 세는 걸 잊었다"고 말할 정도니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을 꼽는 게 더 쉬울 듯하다. 재공연까지 합치면 1년 내내 공연 중인 셈이다.

저 키 작죠?” 머쓱하게 인사를 건네는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대학생 딸을 둔 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앳된 모습이었다. 인기 뮤지컬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익숙했던 ‘뒷모습’이었지만 앞모습은 예상보다 더 상큼했다. 하지만 이내 공연장에선 그 작은 몸으로 무대 전체를 휘어잡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저 키 작죠?” 머쓱하게 인사를 건네는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대학생 딸을 둔 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앳된 모습이었다. 인기 뮤지컬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익숙했던 ‘뒷모습’이었지만 앞모습은 예상보다 더 상큼했다. 하지만 이내 공연장에선 그 작은 몸으로 무대 전체를 휘어잡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92년 뮤지컬 '코러스라인' 반주로 뮤지컬 세계를 경험한 뒤 1997년 '명성황후' 이후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뛰어들어 2001년 '둘리'에서 음악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음악감독·편곡·지휘·작곡 등을 망라하며 '섭외 1순위'로 꼽혔고 주요 뮤지컬 상은 그녀 차지였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며 더욱 낯익은 이름이 됐다.

최근 '더 라스트 키스(옛 '황태자 루돌프')' 공연을 앞두고 LG아트센터 음악감독 대기실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피아노와 마사지 의자, 분장용 책상이 준비돼 있었고,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첫 지휘봉을 잡았을 때를 기억하나.

"2001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둘리'를 올리기 전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 때였다. 당시 불우 청소년, 소년소녀 가장, 장애 아동 등 사회 소외 계층을 초청해 영부인이 함께한 행사였다. 영부인이든 누가 와도 전혀 떨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로비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우리 둘리 만나러 온 것 맞죠?'라며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걸 들으니 손이 덜덜 떨렸다. 저작권 문제도 일부 해결이 안 된 상태였고, 조명 같은 시설에도 문제가 있었다."

―뭐가 제일 어려웠나.

"우리끼리는 재밌을 것 같다고 했던 부분에서 이상하게 아이들이 웃지 않았다. 담벼락 밑에서 라면을 먹으며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이라는 '라면송'을 하면 '큰 박수 나겠다' 했는데 객석에 반응이 없었다. 우리끼리는 '뭔가 부족하다' 생각했던 장면, 둘리가 타임머신 타고 '엄마!'하고 외치고 또치가 아무런 개연성 없이 '엄마 저기있어!'라고 하는데 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재밌는 건 그 공연만 그랬다. 다른 날은 웃길 법할 때 웃고, 별로일 때는 또 허접하다는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그 리허설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쳤나.

"지휘를 맡거나 작곡할 때는 주 관객층이 어떤 사람일까, 관객 눈높이에서 어떻게 접근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드레스 리허설 때 그 아이들에겐 '엄마'를 찾는다는 게 가슴에 맺힌 소원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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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 연습실에서 김문정 감독./로네뜨

―뮤지컬 음악감독을 언제부터 꿈꿨나.

"어린 시절부터 항상 음악은 내 주변에 있었다. 고적대와 교회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 그때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가 가수 유희열, 드러머 오종대다. 대학 시절 실용음악과에 다니면서 세션(반주) 활동을 많이 했다. 가수 이문세·변진섭 등 콘서트와 TV 토크쇼 '자니윤쇼' 같은 무대에서도 섰다. 노래방 반주 음악도 수천 곡 녹음하고, 방송 배경 음악도 만들었다. 음악을 하고 있는 동안엔 무엇이든 다 좋았다. 뮤지컬은 모든 것의 총합이었다. 국악, 재즈, 록, 클래식 모든 장르가 녹아 있었다"

―방송에서 지휘하는 동작으로 출연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화제가 됐다.

"매일 하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그렇게 입에 오르내릴 줄 몰랐다. 성공률은 반반이다. 난 문을 열어줄 뿐이다. 받아먹는 건 그들 능력이다. 한번은 고음 하나에 전전긍긍해 그것만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7초 때문에 공연 전체를 망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체를 봐야 하는데 사람들은 때로 하나에 집착하다 전체를 망가뜨린다."

―등으로 관객 반응을 읽는다고 했다.

"만회를 하려다 보면 오버하게 된다. 내 자리는 평정심이 필수다. 순간적 판단력도 중요하다. 무대 전환이 안 되거나 조명이 나가거나, 배우가 늘 하던 속도대로 대사를 안 하거나 컨디션이 나빠 빨리 음악을 끊거나, 반대로 더 끌어줘야 하는 등 수백 가지다. 내가 머뭇거리면 모든 게 무너진다."

―항해하는 선장 같다.

"맞다. 내 목표는 '익숙함이 느슨함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100번 공연을 해도 오늘이 처음인 듯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 속 연주자들은 무대를 볼 수 없다. 배우들 모습이 나를 통해 연주자들에게 전달된다. 거울 같은 역할인 셈이다. 배우와 연주자들의 감정과 에너지를 끌어내 서로에게 전달해줘야 한다. 연주자들이 늘어지면 그 앞에서 춤도 추고 표정 개그도 해서 연주자들을 웃기기도 한다."

―단원들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공연의 일부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공연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상상력이 더 발달해 있다. 자기 파트가 쉴 때 배우 연기를 내심 따라해보거나 스도쿠, 뜨개질 솜씨를 자랑하며 거꾸로 날 웃기기도 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러 개 알약을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알로에다. 신경 쓰면 배가 아픈 증세가 생겼다. 한번 호되게 당한 적 있다. 내가 없으면 공연이 중단되기 때문에 정말 혀를 깨물까, 그대로 쓰러질까 별 생각을 다했다. 직업병인 것 같다."

―17년째 슬럼프가 없는 것 같다.

"2~3년 전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사람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인생 목표였던 '레미제라블'도 해내서 더 오를데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련과 고난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때 '도리언 그레이'라는 암울한 분위기의 작곡 의뢰가 들어왔는데 우울했던 마음이 절로 노래로 나왔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며 "감독님, 필요한 거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더 엠씨' 단원들이었다. 숙면에 효과 있다며 허브오일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더 라스트 키스' 주인공을 맡은 아이돌그룹 '빅스' 레오(정택운)가 "어무이~" 하며 어리광을 피우더니 사탕을 손에 슬쩍 놓고 갔다.

―'선원'들은 어떻게 이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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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뮤지컬 '코러스라인' 반주로 뮤지컬 세계를 경험한 김문정 음악감독. 편곡·지휘·작곡 등을 망라하며 '섭외 1순위'로 꼽혔고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며 더욱 낯익은 이름이 됐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거세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위에서 짓누른다고 생기는 건 아니다. 내가 많이 알고 있으면 된다. 사람들의 질문에 막히지 않으면 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요즘엔 대학생인 큰딸 또래 배우들이 많아 대부분 나보고 '엄마'라고 한다."

―집에서는 어떤 엄마인가.

"1년 365일을 거의 매일 밤 12시에 들어갔다. 육아를 잘 해낼 리가 없었다. 친정 엄마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공연이 비어 열흘 정도 시간이 생겼다. 밤 10시 반쯤 집에 들어와 있었더니 고등학생인 둘째딸이 학원에서 돌아와 '엄마 웬일로 이 시각에 집에 있어!'라며 반겼다. 짠한 마음에 '매일 엄마가 같이 있어줘야 되는데, 그지?'라고 말했더니 둘째가 대뜸 이런다. '난 엄마가 이 시간에 같이 있으면 너~무 좋은데, 이 시간에 없으면 너~~무 멋있어.' 고마웠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목표가 있다면?

"잘 쉬어보는 것. 어느 순간 느꼈는데 놀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바닥에서 나 욕하면 나쁜 사람이야. 24시간 중 18시간을 무대에 쏟는데 나만큼 열심히 하는 이가 누가 있다고…'라면서 혼자 울기도 했다. 신기한 건 힘들 때도 지휘를 시작하면 약 먹은 것처럼 몸이 개운해진다. 라이브가 주는 긴장감이 좋다. 오늘도 생각했다. '젠장, 천직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