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영훈·극작·연출·배우의 톱니바퀴…뮤지컬 '광화문연가'

  • 뉴시스

입력 : 2017.12.26 09:48

뮤지컬 '광화문연가'
'광화문연가'는 톱니바퀴 네 개가 잘 맞물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곡가 이영훈(1960~2008)에 대한 헌사, 명곡의 드라마틱한 배치, 반전이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 배우들의 명연이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있다.

1980~1990년대 정서를 강력하게 환기하는 뮤지컬로, 주인공 '명우'가 임종 1분을 남기고 기억 또는 마음의 빈집에 똬리를 튼 옛사랑 '수아'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골격이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문구로 유명한 시인 기형도 '빈집'이 중요한 대사로 사용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옛사랑' 등 주로 가수 이문세와 콤비를 이뤄 히트곡을 양산한 작곡가 이영훈의 곡들을 묶은 뮤지컬답게 고인에 대한 헌사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영훈 작곡가는 시적인 가사와 함께 서정적인 멜로디로 한국 '팝 발라드' 장르를 개척한 주인공으로 통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고인의 20여 곡을 삽입했다.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는 고인과 고인을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송가(送歌)이자 이영훈의 아내인 영훈뮤직 김은옥 대표를 위한 위로가처럼 느껴진다.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라고 이문세가 노래한 이영훈의 '기억이란 사랑보다'의 노랫말처럼 사랑보다 더 강한 듯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이길 수 없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역시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을 묶은 '광화문연가'라는 이름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2011년 광화문과 가까운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했다. 2012년 LG아트센터 재공연, 그해 같은 해 충무아트홀(충무아트센터)에서 앙코르 공연했으며 그해 말과 다음 해 초 일본에 진출하기도 했다.

5년이 흐른 뒤에 제작되는 이번 버전은 기존과 상관없이 50년 전통의 세종문화회관 전속단체 서울시뮤지컬단(단장 한진섭)과 CJ E&M 공연부문(부문장 박민선)이 공동 제작, 새로운 초연으로 다시 막을 올렸다.

이전 버전은 두 남자와 비련의 여자 주인공의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새로 대본을 쓴 새로운 버전은 사랑을 기억과 지금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기억을 재편집하고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드는데, 명우의 조력자인 '월하'라는 캐릭터로 이를 가능케 한다. 명우의 시간 여행 안내자이자 극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미스터리한 캐릭터다.

이전 버전 연출자이기도 한 이지나는 새 버전에서도 연출을 맡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영훈에 대한 헌사, 사랑과 기억에 대한 애틋함을 전하는 데 성공한다. 온고지신의 미학인 셈이다.

이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지만, 이전 버전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1막의 마지막 부분의 아우라를 새롭게 가져오는 묘도 발휘했다.

민주화 열기가 불붙던 1980년대 학생운동 도중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여대생의 비명이 겹쳐지는 넘버이자 주인공들의 인연이 엇갈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이전 버전과 새 버전에서 모두 1막 마지막에 삽입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작가와 연출이 이처럼 탄탄하게 깔아놓은 판에 명곡과 이야기가 끌어내는 강렬한 향수가 맞물리며 치열한 연말 뮤지컬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배우들 역시 호연한다. 발군은 월하 역을 맡은 정성화와 차지연. 뮤지컬계 가장 핫한 블루칩들이자 가창력으로 내로라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배역에 캐스팅돼 사전에 화제가 된 배역이다.

능수능란한 정성화의 월하가 좀 더 능청스럽고 유쾌하다면, 카리스마의 차지연은 여신에 가까운 멋있는 기운을 보여준다.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곡이라도 편곡을 다시 해야 했던 김성수 음악감독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묘미다.

이와 함께 감수성 연기로 유명한 안재욱, 이건명 등 중년 명우, 블루칩 뮤지컬배우 박강현과 '인피니트' 멤버 김성규의 젊은 명우를 연기하는 모습도 볼거리다. 중년 수아 역의 임강희, 젊은 수아 역의 린지, 명우의 아내 시영 역의 이하나도 기억해야 한다.

내년 1월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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