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12 03:02
35년째 탄광촌 삶 그려온 황재형
7년 만에 유화 대신 머리카락으로 '십만 개의 머리카락' 展 열어
"머리카락은 사랑의 징표"
"10년 전, 이사 간 광부 집에서 이 깨진 거울을 발견했죠. 조각난 거울을 버리지 않고 광부는 자기 아내가 20대 때 찍은 사진을 끼워넣었더군요. 진달래꽃 앞에서 맑게 웃는 여인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어요. 내가 탄광촌에 들어와 끝없이 찾아 헤맸던 인간의 순수한 심성, 황순원 선생이 '우리가 예술로 드러내야 할 것은 누이의 누런 이'라고 했던 그 마음이 깨진 거울 속 사진에 오롯이 담겨 있었지요."
7년 만의 신작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을 위해 태백에서 서울로 새벽같이 올라온 황재형(65)은 길이 30㎝쯤 돼 보이는 낡은 거울을 보여주며 말했다. "하필 왜 머리카락이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다. 일명 '광부 화가'로 35년째 태백 탄광촌 사람들 이야기를 질박한 유화로 그려온 황재형이 모처럼 들고나온 캔버스가 온통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있었다. "35년 전 인간의 참모습을 만나러 광산에 들어왔지만 나 역시 내 눈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만 그들 모습을 그린 게 아닌지, 타인의 불행으로 내 행복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거울 속 사진이 일깨워주더군요. 화가의 개성은 최대한 누르고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으로 그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7년 만의 신작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을 위해 태백에서 서울로 새벽같이 올라온 황재형(65)은 길이 30㎝쯤 돼 보이는 낡은 거울을 보여주며 말했다. "하필 왜 머리카락이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다. 일명 '광부 화가'로 35년째 태백 탄광촌 사람들 이야기를 질박한 유화로 그려온 황재형이 모처럼 들고나온 캔버스가 온통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있었다. "35년 전 인간의 참모습을 만나러 광산에 들어왔지만 나 역시 내 눈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만 그들 모습을 그린 게 아닌지, 타인의 불행으로 내 행복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거울 속 사진이 일깨워주더군요. 화가의 개성은 최대한 누르고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으로 그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캔버스에 머리카락'이라고 적힌 신작 27점은 첫눈에도 작가의 '고행'이 느껴진다. 태백의 미용실을 순례하며 얻은 머리카락들을 한 올 한 올 접착제로 붙여 나간 지난한 작업이다. 한 작품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이 평균 석 달. 손이 망가지고 눈의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물감 대신 머리카락을 선택한 멍에죠.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아요, 하하!"
광부이자 화가인 황재형에게 머리카락은 사랑이다. 머리카락 한 뭉텅이와 짚신으로 표현한 '원이 엄마 편지'는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이응태(1556~1586) 무덤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라와 함께 나온 유품 중 아내가 자기 머리카락으로 지은 미투리 한 켤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동서양 모두에서 머리카락은 사랑의 징표였어요.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서 보냈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장신구가 유행하기도 했지요."
광부이자 화가인 황재형에게 머리카락은 사랑이다. 머리카락 한 뭉텅이와 짚신으로 표현한 '원이 엄마 편지'는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이응태(1556~1586) 무덤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라와 함께 나온 유품 중 아내가 자기 머리카락으로 지은 미투리 한 켤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동서양 모두에서 머리카락은 사랑의 징표였어요.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서 보냈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장신구가 유행하기도 했지요."

검은 머리카락으로 검은 탄광을 '그린' 첫 작품 '별바라기'는 갱도 앞에서 쉬고 있는 광부들 모습이다. '내 땅을 딛고 서서'는 신입 광부가 들어온 날 한바탕 어우러져 밥을 나누는 정겨운 장면. '아직도 가야 할 땅이 남아 있는지'도 뭉클하다. 물난리로 탄광촌이 뒤덮인 날 어디에 발 디뎌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주민들. "농촌에서 도시로, 다시 탄광촌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홍수로 집을 잃으면 또다시 갈 곳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린 작품입니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황재형은 민중 미술 1세대로 불리는 리얼리즘의 대표 주자다. 갱도 매몰 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을 그린 '황지 330'으로 데뷔한 뒤 탄광촌에 살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흙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가 2013년 발표한 인물화 '아버지의 자리'는 삶의 뒷전으로 밀려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젖은 눈망울을 묘사해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군부독재, 숨 막히는 도시 생활이 싫어 대학 졸업하자마자 태백으로 들어간 황재형은 결벽이 심한 작가였다. "죽은 광부의 아내들은 보통 선탄부 일을 해요. 탄에서 돌을 골라내지요. 일을 마친 뒤 그들이 즐겁게 웃으며 목욕하는 장면이 애틋해 화폭에 꼭 담고 싶었는데, 오랜 망설임 끝에 포기했어요. 그 욕망은 결국 도시인인 나의 퇴폐성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날의 죄의식을 삭이고 지우기 위해 이 고달픈 머리카락 작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14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02)720-1020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황재형은 민중 미술 1세대로 불리는 리얼리즘의 대표 주자다. 갱도 매몰 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을 그린 '황지 330'으로 데뷔한 뒤 탄광촌에 살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흙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가 2013년 발표한 인물화 '아버지의 자리'는 삶의 뒷전으로 밀려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젖은 눈망울을 묘사해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군부독재, 숨 막히는 도시 생활이 싫어 대학 졸업하자마자 태백으로 들어간 황재형은 결벽이 심한 작가였다. "죽은 광부의 아내들은 보통 선탄부 일을 해요. 탄에서 돌을 골라내지요. 일을 마친 뒤 그들이 즐겁게 웃으며 목욕하는 장면이 애틋해 화폭에 꼭 담고 싶었는데, 오랜 망설임 끝에 포기했어요. 그 욕망은 결국 도시인인 나의 퇴폐성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날의 죄의식을 삭이고 지우기 위해 이 고달픈 머리카락 작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14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