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17 01:36
[제1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뮤지컬 극본·한아름 '영웅'
첫작품으로 스타 된 뮤지컬 작가… 집 드나들듯 도서관서 작업 열중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 한아름(40)은 자신을 "원조 '뮤덕'(뮤지컬 덕후·마니아)"이라고 소개했다. "어릴 때 집 근처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교복 차림으로 매일 나타나니 배우들이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였죠. 남경주 선생님의 무대 열정을 보고 자랐고 류정한씨를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써주고 싶었어요. 성공한 덕후가 바로 저예요."
말하는 내내 "수상이 믿기지 않는다"며 얼굴을 붉혔다. "희곡을 쓰다 어느 순간 뮤지컬 대본을 맡았는데, 국내 창작 뮤지컬이라고 해봤자 소극장 뮤지컬이 대부분이라 조명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창극도 해보고, 오페라에도 도전했는데 반응도 시원치 않고, 이대로 잊히는 줄 알았죠."
서울예대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한아름의 출발은 연극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서재형(47) 연출가와 연극 '죽도록 달린다'(2004)로 주목받았다. 그 뒤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 '릴레이' 등으로 호평받았고 2006년 결혼했다.

한아름을 뮤지컬 스타덤에 올린 '영웅'(2009년 초연) 역시 그의 뮤지컬 입봉작이다. "어느 날 윤호진('영웅' 제작자) 선생님이 저희 연극을 재밌게 보셨다면서 대본 의뢰를 하셨어요. 박동우(무대디자인)·이란영(안무)·김문정(음악 감독) 등 쟁쟁한 선생님들에게 감히 낄 상황이 아니었는데 도박을 하신 거죠. 그때 깨달았어요. 뮤지컬 대본이란 혼자 완성하는 게 아니라 철저한 협업으로 탄생한다는 걸요."
도서관을 집 드나들듯 하며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내는 데도 적극적이다. 혼자 다큐멘터리를 쓰는 작업이 아니라, 안무·무대미술·영상·의상 등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절충해 대본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뮤지컬 작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고치고 또 고쳐요. 스태프, 배우들 요청도 잘 받아들이죠. 하지만 딱 한 번 거절한 적 있어요. '장부가' 노래가 '이루도록'이라고 끝나거든요. 노랠 부르다 보면 목이 멘다며 모음으로 끝내달라고 하더군요. 안중근의 단호함과 어느 순간의 절명을 표현하려면 강하게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 대차게 거부했어요."
그 뒤 '윤동주, 달을 쏘다' '청춘 18대1' 등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은 그는 얼마 전 '전업 작가'를 선언했다. 경제적·체력적으로 힘들어 모든 걸 포기하려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어느 날 연출님(남편)이 '나라의 도둑'이라고 꾸짖어요. 그간 받은 지원금이 얼마인데 중도 포기하느냐면서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강의 등으로 받는 여러 수입원을 포기하고 "글만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강백 극작가처럼 최소 1년에 한 편 이상의 신작을 내놓고 싶어요. 시야도 넓혀서 공연, 영화 등 글 쓰는 일이면 뭐든지 할 거예요. 버티고 살아남아서 저라는 존재 자체로,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심사평] 강렬한 노랫말로 안중근의 인간적 매력 극대화
한국 뮤지컬 시장을 끌고 가는 동력으로 대부분 외국산 대작을 꼽는다. 그 틈바구니에서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는 창작 뮤지컬이 새롭게 쏟아지고는 있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뮤지컬 '영웅'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세대·남녀 구분 없이 보통의 국민이 즐기며 감동하는 창작 대형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한아름이 창조한 안중근은 생생한 실체로 다가온다. 실존 인물들과 함께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조력자들은 드라마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2시간 반 동안 관객의 호흡을 줄곧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어머니 조마리아의 존재를 다정하나 엄격한 뮤지컬 가사로 부각시키며 안중근의 고뇌와 인간적 매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가사의 힘은 강력하다. 뮤지컬 극본이 연극 희곡과 어떻게 다르며 뮤지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등은 안중근의 고뇌와 자긍심을 어떤 대사보다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아리아 '황혼의 태양'은 늙어가는 거물 정치인의 고뇌를 쓸쓸하게 담았다. 시대의 영웅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희망을 담은 한아름의 '영웅'을 2017년 차범석 희곡상 뮤지컬 부문 당선작으로 선택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심사위원 박명성·고희경·김광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