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17 01:40
[제1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장막 희곡·고연옥 '손님들'
사건·사고 파고드는 극작가 사회문제 정곡 찌르는 작품 써와
희곡 '손님들'로 제11회 차범석 희곡상 장막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극작가 고연옥(46)에겐 '사건·사고 전문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어린 시절 사회 문제를 파고드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잠시 월간지 기자를 한 적도 있지만 꿈은 '작가'로 풀어냈다. "어느 날 한 연출가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전생에 망나니였어? 왜 그리 무대에 피가 선연해?' 남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회의 정곡을 찌른다며 표현해주신 대단한 칭찬이었죠."
고연옥 작가가 올 초 무대에 올린 '손님들'은 존속 살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2000년 스무 살 청년이 부모를 살해한 '이은석 사건'을 바탕으로 여러 뉴스에 등장했던 근친 살해 사건을 엮어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었다. 그는 이 작품을 들고 최근 한·중·일 연극 교류 축제인 '베세토 연극제'에서 중국 관객들을 만났다. "중국인들이 그렇게 열렬히 반응할 줄 몰랐어요.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세상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은데 왜 이리 처참하고 슬픈 얘기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했지요. '굉장한 시련과 고통을 지난 뒤에 느끼는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고. 왜 우울한 얘기를 하느냐 묻지만 전 그 속에서 희망을 찾거든요. 고민하고 투쟁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에 인간이 희망적인 것 아닐까요?"

고 작가는 청송감호소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2001), 혼혈인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발한 '주인이 오셨다'(2011) 등 화제작으로 많은 마니아층을 몰고 다닌다. "상을 주신다기에 고마우면서도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작품의 출발은 연출가 김정씨가 있어 가능했거든요. 어른들의 철없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부모보다 더 어른스러워져야 하는 아이들을 그려낸 건데, 저만 주목을 받았네요."
그는 "극작가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95년 부산에서 이윤택 연출가의 '드라마 창작' 강의를 듣는데 어느 날 그를 불러 일으켜 세우더란다. "여러분, 이 사람은 작가가 될 겁니다." 그 말이 마치 예언처럼 고 작가를 옭아맸고, 그날 이후 잠자는 시간 빼고 혼잣말을 하며 대사를 읊고 다닌다고 했다.
미셸 푸코와 해나 아렌트 작품을 읽으며 사건·사고와 인간 심연과의 연계를 파고든 그는 요즘 신화 읽기에 빠져 있다. "신화는 인간 본성을 꿰뚫는 거울이자,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증폭되는 사건들의 집합체"라서다. "연출가 한태숙 선생님이 인공지능이 지배해도 마지막 남는 건 연극일 거라고 하셨지요. 인간 세계의 정수를 가장 명확하게 전달할 마지막 도구이자 희망! 실패가 두려워 창작극에 인색한 경우가 많은데 더 좋은 창작극이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심사평] 지옥 순례하며 구원의 가능성 탐사한 역작
올해 차범석희곡상 수상작은 고연옥의 '손님들'이다. 고연옥은 1996년 '꿈이라면 좋았겠지'로 등단한 이래, 스무 해가 넘도록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중견 작가다. 그가 써낸 작품들은 질에 있어서나 양에 있어서나 이 시대 한국 연극이 거둔 소중한 성취요 자산이다.
고연옥은 지옥(地獄)을 순례한다. 그가 찾아드는 곳은 언제나 막다른 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상의 감옥, 극한에까지 밀어붙여져 유폐된 삶들이다. 현재에 뜨겁고 성실하게 반응해온 작가 고연옥은 근래에 신화에 대한 천착을 통해 지옥의 오래된 연원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현재와 신화의 교직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오래된 물음은 더욱 깊고 집요해졌다. 수상작인 '손님들'에서 부모를 살해한 소년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삶 앞에 서 있다. 그럼에도 소년은 회복과 재생을 향한 갈망을 버리지 못한다. 작가는 유머와 그로테스크를 통해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소년은 불가능에 대한 희구를 멈추지 않으며 그를 통해 신화적 위엄을 얻는다. 이 형상은 작가의 고통에 찬 결단과 윤리를 집약한다. 구원은 지옥 밖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다. 소년은 무너진 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심사위원 손진책·허순자·배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