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12 09:40
다큐멘터리 요소를 도입한 연극이라고 하면 지레 겁먹고 몸을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 지난 7일 나란히 개막한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극작·연출 김재엽)와 연극 '워킹 홀리데이'(연출 이경성)는 지적(知的)인 자극과 동시에 감성적으로 뭉클함을 안긴다.
무거운 주제에 비수를 꽂는 고발극이라기보다, 우리가 알고는 있었지만 망각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윤리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
'알리바이 연대기' 등 객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적인 연극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재엽 연출(44·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의 신작인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화'된 이민자 세대인 '파독간호사' 이야기다.
김 연출이 2015년 연구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 방문교수로 1년간 체류할 당시 만난 고(故) 유정숙 재독 정치 박사와 파독 간호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1968년 9월 해외개발공사에 의해 독일로 이주한 간호여성들을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제대로 톺아본 적이 없다. 개별적으로 정체성을 부여하기보다 역사책 속에서 곱게 한복을 입은, 경제대국을 위한 숭고한 상징으로만 인식돼왔다.
실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정부는 외화벌이, 독일정부는 궂은일을 하는 노동력으로 여겼다.
하지만 60대 미망인과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랑을 다룬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를 보고 눈물 흘리는 그녀들은 자신들과 아랍권 여성 등 현지에서 소수자 취급 받던 이들의 인권을 위해 맞섰다.
배우 전국향, 이영숙, 홍성경을 통해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 파독 간호사들은 정작 대한민국 내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2017)에도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보고, 분개 이를 한국은 물론 독일 전역에 알리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연극을 보고 있으면, 픽션 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사실은 종종 상상력을 넘어선다. 김 연출은 역사 밖에 숨겨졌던 이야기를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와, 다시 세상과 연결시키는 '사실의 순환구조'를 연극을 통해 만들어낸다.
또한 1인 다역을 맡는 독일 국적의 배우들인 윤안나와 필립 빈디쉬만이 출연하는데 '단일 민족' '순수 혈통'의 신화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균열을 낸다. "고향이 별 거냐. 사는 데가 고향이지" 같은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극을 다 보면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집으로 다음 찍힌 쉼표에는 수많은 고민과 성찰, 여운이 담겼다. '병동소녀'는 간호사라는 뜻의 독일어(Krankenschwester)를 김 연출이 의역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연극 '생각은 자유'에 이은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 - 베를린 코멘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환도열차' '수상한 수업' 이후 3년 만에 제작하는 창작 초연작이다.
12월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실제 파독간호사 김순임, 송금희, 서의옥 씨가 12일 오후 3시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15일에는 재독 한인 여성들의 삶이 남겨진 에세이 낭독회가 열린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인 이경성 연출(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 대표)의 신작인 '워킹 홀리데이'는 어느 순간 무감각한 존재가 돼 버린 땅을 인간의 본질적인 신체 활동인 걷기를 통해 읽어내고자 한 작품이다.
지난 5월부터 9월 사이에 이경성은 배우, 스태프와 함께 3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인 DMZ(Demilitarized Zone) 일대 300㎞를 도보로 횡단했다.
극은 분단의 풍경을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한 배우 장성익, 나경민, 김신록, 우범진, 성수연, 신선우가 이 연출과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무대 한 가운데에는 DMZ 풍경을 축소한 모형이 놓여 있다. 아울러 배우들이 걸으면서 실제 촬영한 영상이 틈틈이 상영되고 메인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 뒤편까지 골고루 사용하는 동선으로 인해 극장 안에서 연기하는 모습들 역시 캠코더를 통해 중계된다.
배우들이 걸으면서 여과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은 심적으로 움찔거리게 만든다. "서울 근교의 아주 살기 좋은 동네라고만 생각했던 파주를 가보고 느낀 건, '아 이거 생각보다 북한이랑 되게 가깝구나.'"(신선우) 같은 대사 아닌 대사들 말이다.
'워킹 홀리데이' 팀이 팸플릿에 참고 자료 하나로 목록에 올린 미국 작가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걷기로 역사, 철학, 문학,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이 연극을 걷기를 통해 군대 문제를 거쳐 분단 현실을 톺아본다.
솔닛은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는 행위'라고 짚는다. 대신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다고 명시한다. 결국 보행과 사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며 걷는 곳의 역사적 맥락이 걷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당연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워킹홀리데이' 팀이 드라마터그를 맡은 전강희의 말처럼 '언어보다는 몸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이유로 보인다.
올해 두산연강재단의 '제8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권하윤 작가가 3D 가상현실기법을 이용해 관객을 DMZ 안으로 인간적으로 초대했다면, '워킹홀리데이' 팀은 걷기라는 행위를 극장 안까지 끌어들어와 관객들을 DMZ 안으로 심리적으로 초대한다.
"군인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군인들도 나도 DMZ가 없었다면 이곳에 올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뭐 하다가 불쑥 이곳으로 오게 됐을까."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하는 '워킹홀리데이'는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 옆과 객석 뒤를 아무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동안 DMZ는 더 이상 정치, 도구화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무엇이 된다.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와 '워킹홀리데이'는 연극을 통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와 기억하는 법을 신중하게 고민한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실제 역사였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적극 저항한 30~40대 젊은 연극 연출가들이 살아가는 법이다.
무거운 주제에 비수를 꽂는 고발극이라기보다, 우리가 알고는 있었지만 망각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윤리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
'알리바이 연대기' 등 객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적인 연극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재엽 연출(44·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의 신작인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화'된 이민자 세대인 '파독간호사' 이야기다.
김 연출이 2015년 연구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 방문교수로 1년간 체류할 당시 만난 고(故) 유정숙 재독 정치 박사와 파독 간호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1968년 9월 해외개발공사에 의해 독일로 이주한 간호여성들을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제대로 톺아본 적이 없다. 개별적으로 정체성을 부여하기보다 역사책 속에서 곱게 한복을 입은, 경제대국을 위한 숭고한 상징으로만 인식돼왔다.
실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정부는 외화벌이, 독일정부는 궂은일을 하는 노동력으로 여겼다.
하지만 60대 미망인과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랑을 다룬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를 보고 눈물 흘리는 그녀들은 자신들과 아랍권 여성 등 현지에서 소수자 취급 받던 이들의 인권을 위해 맞섰다.
배우 전국향, 이영숙, 홍성경을 통해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 파독 간호사들은 정작 대한민국 내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2017)에도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보고, 분개 이를 한국은 물론 독일 전역에 알리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연극을 보고 있으면, 픽션 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사실은 종종 상상력을 넘어선다. 김 연출은 역사 밖에 숨겨졌던 이야기를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와, 다시 세상과 연결시키는 '사실의 순환구조'를 연극을 통해 만들어낸다.
또한 1인 다역을 맡는 독일 국적의 배우들인 윤안나와 필립 빈디쉬만이 출연하는데 '단일 민족' '순수 혈통'의 신화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균열을 낸다. "고향이 별 거냐. 사는 데가 고향이지" 같은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극을 다 보면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집으로 다음 찍힌 쉼표에는 수많은 고민과 성찰, 여운이 담겼다. '병동소녀'는 간호사라는 뜻의 독일어(Krankenschwester)를 김 연출이 의역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연극 '생각은 자유'에 이은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 - 베를린 코멘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환도열차' '수상한 수업' 이후 3년 만에 제작하는 창작 초연작이다.
12월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실제 파독간호사 김순임, 송금희, 서의옥 씨가 12일 오후 3시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15일에는 재독 한인 여성들의 삶이 남겨진 에세이 낭독회가 열린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인 이경성 연출(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 대표)의 신작인 '워킹 홀리데이'는 어느 순간 무감각한 존재가 돼 버린 땅을 인간의 본질적인 신체 활동인 걷기를 통해 읽어내고자 한 작품이다.
지난 5월부터 9월 사이에 이경성은 배우, 스태프와 함께 3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인 DMZ(Demilitarized Zone) 일대 300㎞를 도보로 횡단했다.
극은 분단의 풍경을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한 배우 장성익, 나경민, 김신록, 우범진, 성수연, 신선우가 이 연출과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무대 한 가운데에는 DMZ 풍경을 축소한 모형이 놓여 있다. 아울러 배우들이 걸으면서 실제 촬영한 영상이 틈틈이 상영되고 메인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 뒤편까지 골고루 사용하는 동선으로 인해 극장 안에서 연기하는 모습들 역시 캠코더를 통해 중계된다.
배우들이 걸으면서 여과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은 심적으로 움찔거리게 만든다. "서울 근교의 아주 살기 좋은 동네라고만 생각했던 파주를 가보고 느낀 건, '아 이거 생각보다 북한이랑 되게 가깝구나.'"(신선우) 같은 대사 아닌 대사들 말이다.
'워킹 홀리데이' 팀이 팸플릿에 참고 자료 하나로 목록에 올린 미국 작가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걷기로 역사, 철학, 문학,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이 연극을 걷기를 통해 군대 문제를 거쳐 분단 현실을 톺아본다.
솔닛은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는 행위'라고 짚는다. 대신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다고 명시한다. 결국 보행과 사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며 걷는 곳의 역사적 맥락이 걷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당연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워킹홀리데이' 팀이 드라마터그를 맡은 전강희의 말처럼 '언어보다는 몸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이유로 보인다.
올해 두산연강재단의 '제8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권하윤 작가가 3D 가상현실기법을 이용해 관객을 DMZ 안으로 인간적으로 초대했다면, '워킹홀리데이' 팀은 걷기라는 행위를 극장 안까지 끌어들어와 관객들을 DMZ 안으로 심리적으로 초대한다.
"군인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군인들도 나도 DMZ가 없었다면 이곳에 올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뭐 하다가 불쑥 이곳으로 오게 됐을까."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하는 '워킹홀리데이'는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 옆과 객석 뒤를 아무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동안 DMZ는 더 이상 정치, 도구화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무엇이 된다.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와 '워킹홀리데이'는 연극을 통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와 기억하는 법을 신중하게 고민한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실제 역사였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적극 저항한 30~40대 젊은 연극 연출가들이 살아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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