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09 09:50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명예보유자 이영수씨가 지난 7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악기장'은 전통악기를 만드는 공예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의미한다. 삼국 시대부터 현악기 등의 전통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는 악기가 필요할 때마다 궁중에 악기조성청(조선 후기 악기제작을 위해 설치한 임시 기관)을 설치해 악기장을 채용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외가의 소개로 조선 시대의 마지막 악공인 고(故) 김붕기 선생을 알게 되면서, 1954년 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제작 일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속 악공으로서 악기를 제작·수리했다.
그의 전승 활동과 노력은 결실을 맺어 1991년 5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2013년 12월 명예보유자로 인정되기 전까지 그는 '악기장'의 전통 계승과 보급에 평생을 헌신했다.유족으로는 1남4녀가 있다. 현재 아들 이동윤(현 악기장 전수교육조교)씨가 고 이영수 명예보유자를 잇고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시흥시 선영이다. 02-797-4444
'악기장'은 전통악기를 만드는 공예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의미한다. 삼국 시대부터 현악기 등의 전통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는 악기가 필요할 때마다 궁중에 악기조성청(조선 후기 악기제작을 위해 설치한 임시 기관)을 설치해 악기장을 채용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외가의 소개로 조선 시대의 마지막 악공인 고(故) 김붕기 선생을 알게 되면서, 1954년 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제작 일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속 악공으로서 악기를 제작·수리했다.
그의 전승 활동과 노력은 결실을 맺어 1991년 5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2013년 12월 명예보유자로 인정되기 전까지 그는 '악기장'의 전통 계승과 보급에 평생을 헌신했다.유족으로는 1남4녀가 있다. 현재 아들 이동윤(현 악기장 전수교육조교)씨가 고 이영수 명예보유자를 잇고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시흥시 선영이다. 02-797-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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