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모던한 재창조…음악극 '적로'

  • 뉴시스

입력 : 2017.11.06 09:43

음악극 '적로'
실존 인물이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이들의 실제 삶을 밑천 삼아, 100분짜리 음악극으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세종문화회관(사장 이승엽) 서울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김정승) 1주년 기념 브랜드 공연인 음악극 '적로'(부제 : 이슬의 노래)는 이 전통을 소재로, 현재에도 통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24일까지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공연하는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 두 실존 인물의 삶이 재료다.

배경은 1941년 초가을 경성이 배경. 젓대(대금) 연주로 명성이 자자하던 두 사람 앞에 난데없이, 십 수 년 전 불현듯 사라져버린 산월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녀는 진짜 산월을 닮은 산월. 세 사람은 술잔과 음악을 주고받으며, 옛 시절과 인연들을 반추한다.'적로'에서 높게 살만한 점은 작곡가 최우정이 대금, 아쟁 등 전통 국악을 주종으로 삼았지만 재즈 풍의 노래 등 대중적인 문법을 잘 살렸다는 것이다.

기본으로 음향증폭장치를 사용해야 하는 신시사이저가 메인인데 대신 사운드는 피아노 소리 위주로 했다. 대금, 아쟁에다 클라리넷을 혼합했다.

어쿠스틱 사운드(자연음향)를 강조한 140석의 소규모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음향증폭 장치(마이크)를 사용할 거라는 예고에, 장소의 매력이 반감되지 않을까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관객이 볼 때 공연장 오른쪽에 악기와 연주자를 몰고 무대 배경도 겸하는 병풍을 쳐 사운드가 광포하게 흩뿌려지는 걸 방지했다.

무엇보다 발군은 정가, 즉 여창가곡을 부르는 하윤주의 낭창낭창한 목소리였다. 여창가곡이 서양의 예술가곡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아,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는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주반주로 사용됐는데 국악과 서양음악의 깔끔한 조화의 모범답안이었다.

극의 막판에 반전의 비밀을 담고 있는 산월의 아픔과 한, 그리고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위로가 하윤주의 목소리에 모두 녹아들어가 있었다. 박종기 역의 안이호, 김계선 역의 정윤형의 넉살 배인 연기도 좋았다.

국내 내로라하는 창작진들인 안무가 정영두의 연출, 극작가 배삼식의 대본은 정점이다. 정영두는 자신의 주전공을 살려 박종기, 김계선의 '용호상박' 대금 대결을 위트가 배인 씨름으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무대 구석 한편에 호젓한 자작나무를 세워 작은 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한국어 말맛을 가장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는 배삼식의 글 하나하나에는 애절함과 아련함이 뭉근하게 배어 있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또 흘러가도 오늘도 저 산 우에 어제처럼 달이 뜨네 / 유수 같은 세월 따라 이내 청춘 늙어가도 내일도 하늘 우에 저 달이야 늙을소냐"라고 산월이 노래할 때, 마치 관객들 마음을 읽는 것 같아 움찔거렸다.

'적로'는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전통의 재창조가 멋스럽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극 막판에 흐르는 박병천의 '넋풀이'는 세상에서 떠나간 모든 사람을 위한 진혼가, 남겨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가였다.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